1889년에 지어진 답동 성당과 나는 각별한 관계다
육신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왔지만 나의 영혼은
답동 성당을 모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친구처럼 치근덕거리다가도 어떤 때에는
미소만 짓던 아버지처럼 넓은 가슴을 디밀던 곳.
어머니의 거친 손에 등 떠밀리다시피 다녔던 유년을 거쳐
거의 완숙에 가까운 어른처럼 숙달된 복사 시절,
나는 답동 성당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성당에서는 아침 6시와 정오, 그리고 저녁 무렵인 6시에
각각의 삼종을 울린다. 삼종이 울리게 되면,
종소리를 듣는 모든 신자는 삼종 기도를 올리게 되는 데
어느 날 문득 '이 종은 누가 울리는지'가 궁금해 졌다
종이 울리는 곳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그랬더니 늙수그레해 보이는 초로의 어른 한 분이
오래된 나무 계단을 타고 이 층에서 내려오는 게 아닌가?
그 후로부터 삼종이 울려야 하는 그 시각만 되면 그 분을 따라서
종 치는 것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힘이 부치 길래, 저리도 땀을 뻘뻘 흘리시는 걸까?
궁금증은 증폭되었고 '해 보고 싶다!'고 어렵게 건넨 말 한마디에 흔쾌히
그 분은 중간에 연타로 쳐야하는 순간에 동아줄을 내게 맡기셨다.
종을 한 손에 잡는 순간, 놀랍게도 내 몸은 거의
이 삼 미터쯤은 족히 밧줄에 딸려 올라갔던 것이었다.
놓치면 그대로 추락할 판이었다. 그런 대로 처음은 무난하게 지나갔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종의 크기는 엄청나게 컸다.
동네 어귀에 붙어 있는 방범초소 만한 크기였는데
대들보 같은 데에 세 개씩이나 매달려 있던 것이다.
(일전에 회원님들께 보내드린 '개항장 근대 건축 기행' 책자를 참고 삼아 보시면 짐작할 겁니다)
삼종을 치는 데에는 힘 조절과 함께 추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정확한 수량만큼만 쳐야 하는데 숙달된 표 씨 아저씨조차도
간혹 실수할 때가 있는 걸 보면 만만히 볼일은 결코 아니었다.
세 번, 세 번, 세 번 그리고 서른 세 번의 타종을 연이어 쳐야 하는
예민한 순간들은, 사 오 분 가량에 이루어 졌다.
표 씨 아저씨에게 있어서 나는 '빨간 피터'였다. 아니 베드로였다
어느 정도 그 일?에 숙달이 되자
그 분은 내게 열쇠꾸러미를 내게 맡기셨다
가운데 손가락 보다 조금 더 길고, 이빨이 크게 이중으로 만들어진
'ㄱ'자 형의 성당 정문 열쇠와 여느 열쇠와 다를 바 없는 이층 열쇠,
그리고 나의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킨 여타의 열쇠들...
어쨌거나 내가 오래된 성당의 구석구석을 알게 된 이유는 거기에서부터였다
그 분은 가르친 게 없다고 누누이 말씀하시지만
나의 영혼은 그 분으로 인하여 내적 자양이
쌓이게 된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사람의 울림이 다수를 한 덩어리로 움직이게 한다는 것
익명의 누군가에게 소중한(정말 소중한!) 열쇠를 믿고 건네준다는 것
이 보다 더 가치 있는 전수(가르침)는 없었음을 이제야,
그 분께 마음 조아려 고개를 숙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