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신밟기 회한 정월 보름만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오곡밥과 관련되어서도 아니고 귀 밝기 술이라든가, 부럼을 못 먹어서도 아니다. 가족과 관련된 사연은 더더욱 아니다. 다름 아닌 지신밟기 행사 때문이다. 1990년부터 2007년까지, 17년 간 ‘터진개 문화마당 황금가지’ 주최로 매년 행사를 치러.. 인천칼럼 2016.02.26
寫中之米+羔 사중지고 전체의 주제는 미소였다. 입을 벌리지 않은 채 빙긋 웃는 모습이지만,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이해심의 발목을 잡는 그 무언가가 올가미처럼 걸쳐져 있었다. 정지돼 있는 피사체 이전과 그 이후를 짐작할 수 있는 형질의 부재가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호사스러움 한 조각쯤으.. 인천칼럼 2016.02.10
겨울, 그 깊은 봄 늙은 아파트 주차장에 질서 정연하게 주차돼 있던 차들은, 언제 새끼를 치고 또 쳤는지 바깥 도로까지 두세 겹의 민머리를 맞세우고 있었다. 다른 날 같으면 무심했을 모습들이 오늘따라 유독 불편해 보였다. 억지로 시동을 걸어 예열을 마친 스쿠터를 끌고 겨우 정지선에 섰다가, 출발신.. 인천칼럼 2016.01.28
과거도 돈이다 한 반에 칠십 명 가량의 학생들이 열두 반 있다하면, 대략 한 학년에 팔백 명이 족히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삼 년 중학교 과정이니 대략 이천 명 이상이 한 학교 운동장을 왁자하게 들썩거리며 뛰어다녔을 거라는 얘기다. 오죽하면 운동장에서 축구 한판 제대로 하려고 일찍 도시락을 .. 인천칼럼 2016.01.12
아아, 병신년엔 소금을 새해 첫날 칼럼인 만큼 덕담 한 됫박 수북이 담아달라고, 논설실장 김진국 박사가 모종의 압력을 가해왔다. 일상적이고 평이한 말투였지만 귓밥을 잡아당기고 고막을 두드려가며 달팽이관에 도착하는 동안, 그 주문은 엉뚱하게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이곳저곳을 찌르고 다녔다. 인천사.. 인천칼럼 2015.12.31
2015년 12월,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 212번, 2-5801번, 72-5093번. 모종의 광고 전단지에 나붙어 있을 만한 암호 같은 이 숫자들은, 지난 세월에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집 전화번호들이다. 수화기를 들어 여자 교환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상대방 번호를 알려주면 연결해 주던 공전식 전화기를 처음으로, 손가락을 세.. 인천칼럼 2015.12.03
문설주에 풍경을 달며 마음은 스산했다. 노랗게 익어버린 은행잎들이 노견에 걸터앉아 젖은 몸을 쓸어내리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연일, 무시로 내린 비로 인해 한껏 높아진 하늘 높이만큼의 공허를 채울 겨울바람이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장미 한 송이 때문이었다. 프랑스 파리 바타클랑 클럽에서 난사된 총.. 인천칼럼 2015.11.19
그래선 안 된다 ‘안 된다’를 한자로, 계(戒)나 금(禁)으로 옮긴다. 사람을 위협하듯 창이 그려진 계나, 나무로 담을 쌓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금 자는 주로, 힘없는 자에게 ‘해서는 안 될’ 상징적 문자이다. 유사 이래, 적어도 수천 년 동안 그랬더랬다. 문자는 정보의 전달과 획득 과정을 정확하게 .. 인천칼럼 2015.11.05
밥상머리를 재고함 성호(聖號) 외며 십자가를 긋지 않으면 밥을 못 먹게 했던 부모님이셨다. 당신의 부모님이 그랬고, 그 당신의 부모님께서도 그러셨듯이 말이다. 제일 큰 어른이 수저를 들기 전에 숟가락을 들라치면 사나운 눈초리를 쏘아붙이며 저지하는 것은 늘 어머니 몫이었다. 밥상에 팔꿈치 대고 밥.. 인천칼럼 2015.10.23
미숙한 것의 아름다움 사람의 정의를 ‘삶을 알아가는 존재’라 하는데 여전히 방점을 찍는다. 인생이 그래야 한다는 말에도 엄지를 꾹 눌러본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만족스럽기 보다는 실수와 허술함이 더 많아 켕기는 마음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쌓인 마음의 짐은 스스로를 도마 위에 올려놓.. 인천칼럼 201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