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열꽃이 피었다고
미국에서 온 조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투덜거렸다
형님의 부탁으로 외가댁에 하루 밤을 지새던 조카는
아침부터 내려 쪼이던 시골 볕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국에 가시기 전에 미처 못 가져간 책들은
쌀뒤주에 또는 비가 내리칠 법한 창고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어 있었다
그렇게 형님의 책들은 버려져 있었다
차곡차곡 쌓아 끈으로 묶는 동안에
조카의 얼굴 만치 내 얼굴을 부끄럽게 만드는
'포성'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 왔다
책의 내용이 그렇게 엉성할 수가 없었다
사병이 만든 최초의 잡지치고는 너무나도 행색이 없어 보이는
그러나 편집인 이 종복 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선명하게
두 눈에 들어 왔다
때가 때인지라 '차' 떼고 '포' 떼인 내용을 짝맞추고 나니
별 반 없는 책으로써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싶었는데
형님의 버려진 책 묶음 속에 고스란히 숨쉬고 있지 않았던가
거기에는 둘 째 형님의 빛 바랜 고등학생 때 사진도
세 째 형님의 낡은 시집도 있고
네 째 형님의 어눌한 얼굴
다섯 째 형님의 결혼 사진도
국민학교 다닐 때의 내 사진도 그대로 숨어 있었다
근엄함의 상징이었던 큰 형님의 책갈피에는
이렇게 숨은 그림들이 많이 있었나 보다
정리를 다 하고 나니 시골집이 무척이나 가벼워 보였다
백 살을 넘긴 시어머니를 호되게 모셨는지
조카의 외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연실 두드리고 계셨다
"내년에는 볼 수 있을까?"
나이가 들면 가벼운 헤어짐에도 눈물이 글썽해지는가 보다
가뭄도 이런 가뭄은 없다며 개숫물 한 바가지 뜰 수 없이
말라 버린 우물을 망연히 바라보시던 눈을 뒤로하고
시골집을 서둘러 나왔다
버석거리며 밟히는 잡풀들이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국에서 온 조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투덜거렸다
형님의 부탁으로 외가댁에 하루 밤을 지새던 조카는
아침부터 내려 쪼이던 시골 볕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국에 가시기 전에 미처 못 가져간 책들은
쌀뒤주에 또는 비가 내리칠 법한 창고에
아무렇게나 나뒹굴어 있었다
그렇게 형님의 책들은 버려져 있었다
차곡차곡 쌓아 끈으로 묶는 동안에
조카의 얼굴 만치 내 얼굴을 부끄럽게 만드는
'포성'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 왔다
책의 내용이 그렇게 엉성할 수가 없었다
사병이 만든 최초의 잡지치고는 너무나도 행색이 없어 보이는
그러나 편집인 이 종복 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선명하게
두 눈에 들어 왔다
때가 때인지라 '차' 떼고 '포' 떼인 내용을 짝맞추고 나니
별 반 없는 책으로써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싶었는데
형님의 버려진 책 묶음 속에 고스란히 숨쉬고 있지 않았던가
거기에는 둘 째 형님의 빛 바랜 고등학생 때 사진도
세 째 형님의 낡은 시집도 있고
네 째 형님의 어눌한 얼굴
다섯 째 형님의 결혼 사진도
국민학교 다닐 때의 내 사진도 그대로 숨어 있었다
근엄함의 상징이었던 큰 형님의 책갈피에는
이렇게 숨은 그림들이 많이 있었나 보다
정리를 다 하고 나니 시골집이 무척이나 가벼워 보였다
백 살을 넘긴 시어머니를 호되게 모셨는지
조카의 외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연실 두드리고 계셨다
"내년에는 볼 수 있을까?"
나이가 들면 가벼운 헤어짐에도 눈물이 글썽해지는가 보다
가뭄도 이런 가뭄은 없다며 개숫물 한 바가지 뜰 수 없이
말라 버린 우물을 망연히 바라보시던 눈을 뒤로하고
시골집을 서둘러 나왔다
버석거리며 밟히는 잡풀들이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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