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집(宇宙)에 대한 단상

濟 雲 堂 2000. 11. 17. 14:29

天地玄黃 宇宙洪荒
하늘은 헤아릴 수 없이 깊어 검고, 대지는 생명을 담아 키워내는 그릇으로 누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천지가 너무 넓고 거칠기만 하니, 짐작할 수 없는 우리의 몸을 뉘울 집을 가히 우주라 이른다.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소멸해 갑니다.
잔재해 있는 흔적들을 볼 때마다 뼈저리게 다가오는 생명의 고귀함과 그 의미의 지구함을 마음에 둘 적마다 새록새록 생각이 새롭게 변모됨을 느끼게 됩니다.

아침 시간이 되자 곽 쪼가리 같은 아파트 건물 안에서 벌떼처럼 아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차가 있는 집안의 아이들은 미리 발동을 걸어 놓은 승용차에 몸을 싣고
제 각기 정해져 있는 학교로 가거나 학원으로 가야 합니다.
한 번의 무너짐을 기다리기 위하여 쉴 새 없이 허공을 들어올리고 있는 건물.
고철이라는 이름이 유예된 번들거리는 자동차. 하루하루가 다르게 늙어만 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소멸의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직감의 본능은 이성적인 판단으로 끌어 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세뇌 당해 온 삶이라는 유한성에 자꾸만 의미를 불어넣어 자극을 해대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극은 애련과 슬픔과 아픔과 고통이라는 자각에서 이타적인 상련으로 변화되는 놀라운 기적을 유발하게 합니다.
삶의 전반적인 진행 과정에서 상련으로써 느끼는 공통분모가 없다면 이 놀라운 자극은 하나의 자연 현상에 불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과정에서 우주라는 것은 집의 넓은 개념으로 포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의 무너짐은 없고 무너졌다 싶으면 다시 생성하고 다음을 예약하는 놀라운 생명력을 지니고 있을 따름입니다. 추론하건데 이러한 운동성을 거의 영속적이라 말하여 질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지구와 태양계의 생명이 50억 년을 담보해 있다 하더라도 측정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우리의 유한한 삶에 대해서 본질적인 질문은 아마도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상대성이라는 아인쉬타인의 귀한 對的의 관계론은 우리의 무지스러움을 일깨우는데, 일조 했다손 치더라도 이를 감각적으로 혹은 오랜 운동성의 경험을 학문으로 일구어 낸 선인들의 음양, 태극 이론은 정말이지 놀라움과 탄성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집의 본질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소멸해 나가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도 소멸을 위한 창조의 연속성을 부가적으로 부여받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삶의 의미는 뭘까요? 집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좀 더 가까이 다음으로 향하는 불안한 정체성이 아닐까요?.
우주는 안정되어 있지 않고 끝없이 움직이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거대한 집의 상념에서 벗어나 우리가 몸소 체험해 나아가 영혼으로 받아들이는,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우리의 살림을 돌이켜 봅니다.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시시각각으로 변모해 가는 인간의 시간에서 '나'를 인식하고 '너'의 존재를 인식함으로 해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희망의 시각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편견과 편법은 정법과 정견으로 향하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온 삶은 어쩌면 편중의 이름으로 잠시 구속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남을 미워하거나, 남이 하는 것은 뭐든지 우습게 보인다거나, 남이 살아가는 삶은 제 삶이 아니라는 인식들은 결국 집(宇宙)에 대한 相憐의 마음이 없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볼 수 있는 시각 구조가 없다면 꽃은 꽃이라고 공통의 언어로 구현하지 못합니다.
꽃이기 때문에 냉엄하게 식물류의 일각으로 가치 평가됨은 사람의 영혼을 배설물로 여기게 됩니다. 궤변과 사변이 득세하고 득세의 기득권을 가진 아류들이 지배하는 세상일지언정 그 흐름도 곧 변화의 과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배설한다고 함은 살아 있음을 뜻합니다. 곧 움직임이죠. 움직임은 곧 우주의 거대한 행렬에서 결코 다름이 아닌 동류를 뜻합니다.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동류를 느끼고 사는 것. 이타적일 수록에 자아는 훨씬 값지고 분명할 따름으로 변모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 '밤의 대화' 회원 님들께서는 준비하시고 계신가요? 이 다음을 요!
결코 절망만이 있는 건 아니죠? 기다림의 과정에서 나는 문학을 한답네 하고 떡을 만듭네 하고, '너' 없이는 사는 게 재미없네 하고 장단을 치고 노래부르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 소멸의 때가 온다 하더라도 아쉬울 것이 과연 있을까? 의문스럽지만 열심히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한가지 한 몫의 집을 짓듯이 칼럼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


'밤의 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떡 방아간 풍경(이야기 둘)  (0) 2000.11.24
떡 방아간 풍경 (이야기 하나)  (0) 2000.11.21
어둠으로의 초대  (0) 2000.11.12
立 冬 懷 柔(입 동 회 유)  (0) 2000.11.08
틈의 부재  (0) 2000.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