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떡 방아간 풍경(이야기 둘)

濟 雲 堂 2000. 11. 24. 16:11
한 덩어리의 떡이 만들어지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그 시간이 공급하는 무진장한
공간의 자양을 받으며
자연은 제 모습을 세상에 드러냅니다.

자연 안에는
태고 이래로 이제껏 품어 온
자기 정체성을 끊임없이 만들기 위하여
갈등하고 변화를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체성을 만든다는 것은 인위적이기보다는
자연의 일부인 환경의 요인으로 인해
만들어진다고 하는 표현이 맞을는지 모릅니다.

인간이 처해 있는 모든 환경에는
음과 양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음과 양은 서로 정해져 있거나 멈춰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늘 움직이고 서로의 변화에 보조 기능으로써
상호 보완적이고 충돌마저도 서슴지 않는
어찌 보면 불안한 존재성을 지녔다고 보여지기도 합니다.

우리 음식의 특질은 여기서 비롯합니다
무의미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우리의 음식들은
실제로, 실생활과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고
세계의 어느 음식에 비해 지극히 자연 친화적이고
인체구조상의 비밀의 열쇠를 지닌 음양의 모든 특질을
조화롭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 덩어리의 떡이 만들어지기까지
떡을 이루는 자연의 소산들은 객체로써
독립적이고 평범한 자연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두려움의 본능이 샤마니즘의 세례로 거듭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음식의 개척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견과 발명이 뒷받침 되었는데
이의 변화를 주도한 것이 바로 불(火)과 물(水)이었습니다.

불과 물은 모두 살아 움직이는 샤만의 표상으로써
절대적이고 신성시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음식 문화에 있어서 떡이라는 것은
바로 음양 사상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는데
자연적 질료들과의 유기적이고 인위적인 화합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팥을 음의 구조로
머리를 들고 일어서는 쌀을 양의 구조로
이를 총괄하여 무르게, 즉 쉽게 변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물과
다시 모두를 다른 구조로 변화시키는 불에 의하여
떡은 만들어집니다.

판이하게 다른 자연의 독자적 정서가 인간의 지혜로 인하여
새롭게 구성되는 놀라운 기적이 바로 음식이고 바로 떡이 되는 것입니다.
밥과 다르게 떡은 주식이 아니면서, 인간의 삶을 한층 의미 있는 삶으로
초대하는 무의미의 의미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의 전면에 떡이 사용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생로병사의 모든 치레가 적용되는 떡의 의미는 실로 놀라운 음식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3.7일이 지나고 백일이 되었을 때를 기점으로
첫돌 그리고 서로 다른 성씨가 합혼 했을 때
인간의 시계가 다하여 목숨이 다 하였을 때에도 떡이 쓰여지듯이
떡의 뿌리가 내리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우리 문화에 있어서 그 의미는 지대한 것입니다.
정월에 먹는 떡국 떡을 비롯해서 단오에 먹는 수레 떡(수레바퀴 모양의 도장을 찍은 절편-불교의 윤회설에 영향을 받음), 한가위에 먹는 송편, 시월 상달서부터 동지까지 팥으로 만든 떡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떡은 유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먹는 시기와 절기에 따라서 떡의 모양과 소를 넣는 고명들도 달라지게 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곧 자연의 변화를 경외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게 되는데
자연을 극복하되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인간의 의지가 어우러지는 현상인 것입니다.
떡은 바로 이러한 의미가 깃든 지혜로운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떡을 정성으로 만들고
인간의 생로병사와 더불어
내일도 만들어야 하는 떡, 그 한 덩어리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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