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번, 2-5801번, 72-5093번. 모종의 광고 전단지에 나붙어 있을 만한 암호 같은 이 숫자들은, 지난 세월에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집 전화번호들이다. 수화기를 들어 여자 교환수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상대방 번호를 알려주면 연결해 주던 공전식 전화기를 처음으로, 손가락을 세우고 구멍에 꽂아 돌리면 ‘따르륵’ 소리 내며 느리게 원위치하는 다이얼 전화기를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사용했었다. 행화촌 화선장 신신옥 등 제법 잘 알려진 곳은, 굳이 전화번호를 댈 것도 없이 호명만 하면 곧바로 연결해주었고 수화기를 들었어도 교환수가 받질 않았을 땐, 득달같이 달려가 왜 전화를 안 받아주느냐는 시비까지 벌어지던 시기였었다. 촘촘하게 들어선 수백 개의 구멍을 일일이 다 기억해 내는 ‘교환 누나들’의 귀여움을 받았던 관계로 가끔 놀러 가면, 아껴두었다 먹었을 라면도 선 듯 끓여주었고 부채과자로 불리던 센베이도 대뜸 내주기도 했었다. 772번으로 앞자리 전화번호가 바뀌었을 때, 다이얼 전화기는 각별히 주의해야 했다. 마지막 숫자까지 천천히 제대로 돌려야 한다는 점에서였다. 급한 일 때문에 황급히 돌리다가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빠져버려서 거의 다 돌려놓고도 또 다시 돌려야 하는 것만큼 울화통 터지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버튼 식 누름 전화기가 탄생하면서 폭발적인 유행을 선도했지만, 이십여 년도 채 못가서 핸드폰 시장에 밀려 전화기의 대명사는 핸드폰이란 등식을 세상에 올려놓고 말았다. 전화번호와 전화기의 변천과 한 개인이 경험한 소사를 두서없이 주절거리고 말았는데, 여기에는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요즘 대세로 일컫는 스마트폰과 관련되어 일장의 한탄이 잡탕처럼 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스마트폰 보급률이 83%를 넘어섰다고 한다. 17% 안에 있으며 더군다나 여전히 2세대 폰에 ‘011’을 사용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요즘 절대 다수가 점유하고 있는 확률에 밀려 정보와 소통의 장애를 실험당하거나 체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니꼬우면 바꾸라는 벗들의 말 보탬을 따르자니 그간 정들었던 핸드폰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 같고, 진화를 뛰어넘어 재탄생하는 제품들을 일일이 쫓자니 줏대 없는 무지렁이처럼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십여 년을 한결같이 사용해온 오기도 발동했지만, 뻑 하면 바꿔치기하고 맘에 들면 쫓아갔다가 변심해 뒤통수치는, 요변 떨기를 밥 먹듯 하는 세태와는 다르게 살아야한다는 의무감은 마음의 무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행사관련 정보나 장문의 메시지를 즉석에서 열어볼 수 없지만, 늦게나마 컴퓨터를 통해 우보(牛步)처럼 다가가려는 열정이 그래도 있었음 쪽으로 이 지면을 빌어 이해해주었으면 더 좋을 나위 없을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 표현방식(1Q84=1984)으로, 1Q베이비붐(1955~1965) 세대의 전형성에는 복고의지와 신조류 창조의지가 갈등하여 ‘어쩔 수 없음’이 마치 유전적으로 내재돼 있음이 발견된다. ‘그래서는 안 된다’의 복고의지와 ‘그래야만 한다’의 신조류 창조의지로 갈린 세력들이 공통분모로 추앙하고 있는 ‘어쩔 수 없음’의 배후에는 배려와 쟁취, 방치와 강제집행이라는 기본 도식이 깔려 있다. 이는 민주와 비민주, 인문주의와 물질우선주의, 사람중심의 행정이 아닌 실적과 치적위주의 자기만족이, 세력이 약한 쪽을 윽박지르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사용을 일례로 본 이러한 현상은 그 ‘어쩔 수 없음’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실태다. 스마트폰으로 바꿔야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기존 폴더폰을 그대로 유지해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좁혀진다. 그러나 이를 인천 지역사회로 좀 더 확대해보면, 돈이 안 되거나 실적을 순식간에 낼 수 없는 학과를 없애버리겠다는 발상을 가진 자들이 출현한다거나, 약자들의 거처인 배다리 일대를 깔아뭉개 기필코 광폭 타이어로 무장된 덤프트럭들을 위한 산업도로를 재건하겠다는 것 등으로 대변할 수 있다. 뿐만이 아니었다. 1Q베이비부머들이 현재를 이끌고 있음은 분명했다. 이전 시대가 이들을 엄하게 가르쳤고 이후 세대들이 느슨하게 보고 배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추억에 대한 의지는 허름한 세월 속 낡은 외투를 꺼내어 먼지 털어내는 일만큼 무감하게 변했고, 더 많은 돈을 벌어 살만큼만 편히 쓰고 없애버리자는 논리가 미래의 문턱에 머리를 기대 선 것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하여, 2016년은 더욱 명백한 아침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해를 보거나 아니면 해를 안 보거나. 2015년 12월 해거름 무렵, 월미도 앞 바다로 불현듯 뛰어든 달걀노른자 같은 태양이 붉은 옷자락을 주섬주섬 거두어 가고 있다. 느닷없이 ‘팟-R’ 카운터에 놓인 다이얼식 전화기가 유난히 까맣게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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