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씨익 하고 웃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대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이맛살을 모으며 뭔가 골똘해 합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제법 삶의 이력이 붙었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물어보니,
이내 한 숨을 내쉬고 맙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생각의 골은 더 깊어지고 개념화된 언어에
익숙해져야 만이 우리들의 생활은 밀접해져 감을 절실히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
그렇게 살아감으로써 공통분모처럼 생활에 익숙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끼리 모이고 흩어지고 결집하고 분열하는 순환 고리를
끊임없이 이어가며 사는 것은 아닐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화두를 시방 세계에 처음으로 공론화 시킨 성철 스님의 말씀은
규정적인 언어의 딜레마를 역으로 공략하는 뛰어난 선문을
우리에게 던져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저 던져 주었을 한 덩어리의 화두...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사랑이라는 말에 대해서 "애틋이 여기어 위하고 아끼는 마음"이라고
사전적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기실 사랑이라는 말에 내포된 수 없는
느낌들은 오히려 간략하게 표현한 사전적 의미.
그 자체를 무력하게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사랑이라는 말에는 심리적이든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간에
별도의 의미를 첨부하지 않는 한에는 성철 스님의 말(언어)처럼
우리는 고심의 늪에서 여전히 허우적거리며 젖은 몸을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너의 것은 내 것이 되고 나는 너의 사랑을 받으니까!
나 이 외에는 어느 누구와도 사랑할 수 없고
그 외에는 모두 불륜이라고 생각해! 라는 말속에는
흔히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구속"이 묵음처리 된 거라고 봅니다.
종교적인 사랑의 입장에 있어서도 별 다를 바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대의를 위해서 너 하나쯤은 희생이 되어도 괜찮을 뿐 더러
네가 목숨을 다 해 희생하면 내가 그 보상을 해 줄게! 라는 발상이
내재되어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심리적 측면으로, 서로가 서로를 연결 고리로 삼아
보다 단단한 연관 속에서 어차피 외롭고 고독한 삶을 극복하자는 데에는
개인적으로 동감하지만 연결 고리를 원천적으로 삭히게 만들어 버리는
현재의 사회화의 이행 구조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내성들에 대해서
우리는 언어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소쉬르'의 말처럼
약속과 기호로 일관하지만,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로 인하여
우리는 서서히 자유를 잃어 가는 게 아니냐! 말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언어를 비롯한 문자의 계열에 기호로 약속된 말들은
우리를 희망의 빛으로 인도 할 수도 있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던진 인용의 외침은
이내 광기의 메아리도 와락 달겨들고 말았습니다만,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달라 붙어버린 노년일수록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깊은 생각에 잠겨드는 '아름다운 침묵'을 보여줍니다.
우리 밤의 대화 회원 님들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말, 문자, 기호)는 보물? 또는 일종의 폭력?은 아닌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씨익 하고 웃습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고개를 갸우뚱거립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대학교 다니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이맛살을 모으며 뭔가 골똘해 합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제법 삶의 이력이 붙었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물어보니,
이내 한 숨을 내쉬고 맙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생각의 골은 더 깊어지고 개념화된 언어에
익숙해져야 만이 우리들의 생활은 밀접해져 감을 절실히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
그렇게 살아감으로써 공통분모처럼 생활에 익숙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끼리 모이고 흩어지고 결집하고 분열하는 순환 고리를
끊임없이 이어가며 사는 것은 아닐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라는 화두를 시방 세계에 처음으로 공론화 시킨 성철 스님의 말씀은
규정적인 언어의 딜레마를 역으로 공략하는 뛰어난 선문을
우리에게 던져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저 던져 주었을 한 덩어리의 화두...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사랑이라는 말에 대해서 "애틋이 여기어 위하고 아끼는 마음"이라고
사전적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기실 사랑이라는 말에 내포된 수 없는
느낌들은 오히려 간략하게 표현한 사전적 의미.
그 자체를 무력하게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사랑이라는 말에는 심리적이든 정치적이든 종교적이든 간에
별도의 의미를 첨부하지 않는 한에는 성철 스님의 말(언어)처럼
우리는 고심의 늪에서 여전히 허우적거리며 젖은 몸을 부대끼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너의 것은 내 것이 되고 나는 너의 사랑을 받으니까!
나 이 외에는 어느 누구와도 사랑할 수 없고
그 외에는 모두 불륜이라고 생각해! 라는 말속에는
흔히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구속"이 묵음처리 된 거라고 봅니다.
종교적인 사랑의 입장에 있어서도 별 다를 바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대의를 위해서 너 하나쯤은 희생이 되어도 괜찮을 뿐 더러
네가 목숨을 다 해 희생하면 내가 그 보상을 해 줄게! 라는 발상이
내재되어 있음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심리적 측면으로, 서로가 서로를 연결 고리로 삼아
보다 단단한 연관 속에서 어차피 외롭고 고독한 삶을 극복하자는 데에는
개인적으로 동감하지만 연결 고리를 원천적으로 삭히게 만들어 버리는
현재의 사회화의 이행 구조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내성들에 대해서
우리는 언어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소쉬르'의 말처럼
약속과 기호로 일관하지만,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로 인하여
우리는 서서히 자유를 잃어 가는 게 아니냐! 말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언어를 비롯한 문자의 계열에 기호로 약속된 말들은
우리를 희망의 빛으로 인도 할 수도 있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던진 인용의 외침은
이내 광기의 메아리도 와락 달겨들고 말았습니다만,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달라 붙어버린 노년일수록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깊은 생각에 잠겨드는 '아름다운 침묵'을 보여줍니다.
우리 밤의 대화 회원 님들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말, 문자, 기호)는 보물? 또는 일종의 폭력?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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