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호 루 라 기 1

濟 雲 堂 2002. 8. 31. 17:23
밤이 이슥토록 비는 내렸고 아스팔트는 이미 젖어 있었다빗줄기에 갇혀버린 사람들은 건물의 음부에 쪼그려 앉아 있거나비스듬하게 서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계단 아래를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오랫동안 땅 속 깊숙이 숙주 해온 이력이 있는시멘트벽이 뿜어내는 음습함은 세상이 결코 밝은 것만이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었다우리가 말하고 살아가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살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어눌한 논조가 묵묵히 흐르는 가운데어린 아이 하나가 우산 밖으로 오줌을 싸고 있다어느 누구 하나 고개를 내밀어 본다던가그 아이의 고추를 붙잡은 어미의 얼굴에궁금해하거나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어차피 세상은 이미 젖을 대로 젖어 있었으므로이제 비가 그치는 일만 남은 것이다희망과 빛은 어둠과 슬픔이 전제된 것이었으므로지금은 침묵을 하고 있을 뿐그러나 아직도 싸움이 끊이지 않는 이 작은 영역에는혈흔으로 얼룩진 사연들과이빨자국들이 도시 곳곳에 치유될 수 없는상처처럼 불거진 고름만을 품고 있었다그래도 이 비 그치면우리 젖은 가슴을 말린 양지 바른 절벽이라도 있기는 한 것일까절대적 굶주림이 사라졌다고 해도상대적 굶주림은 늘 나의 추억 속에 남아 있었다곤한 잠을 이루는 지금 지구의 반대편에는깨어나는 아침을 맞이하고 극우라는 이념의 배후에는 극좌가 있고죽음이 있으므로 새로운 탄생은 축복 가운데서도한층 고결한 순수 이미지가 되기도 하는 이 냉랭한 불꽃 세상에서과연 나는 나를 나라고 고집할 수 있겠는가
밤의 대화 :: 이종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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