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사는 외톨박이

신신옥 2대

濟 雲 堂 2008. 7. 17. 17:45

 

박관옥 어르신과 그의 아들 박진우

참 대단한 분들이다

신포동에서 신신옥이란 이름을 내걸고 우동 한 종류만을 가지고

50여 년 넘게 장사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탄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1957년 본격적인 개업을 하게 되지만

박관옥 어르신은 이미 20여 년간을 일본 사람 밑에서

우동 만드는 일을 하셨던 이력이 있던 분으로

올해 춘추가 88세 이니 꼭 70년을 우동에 매달려온 장인이다

 

모 대학 건축과를 졸업해 1급 기사로 10여 년 간을 일해온 박진우 형

한 동네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연유로 형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지만

분명 진우 형은 우리 동네 형이다.

게다가 나의 네 째 형하고 동기이기도 하고

서슬 퍼런(?) 모 대학생 모임의 선배이기도 했기에

여간 어려운 사이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세월, 나이 먹어감은 그런 서슬도 무디게 만드는 법

지금은 거의 맞대놓고 편히 지내는 사이

 

먹을 것이 제한적이었던 어린 시절 또는 스무살 시절에

신신옥에서 팔던 우동과 장어 튀김 그리고 간간이 만들어 팔던 짜장면은

당시에 최고의 먹을 거리였었다

 

어른 두 사람이 지렛대를 이용해 뽑아내는 면 발이

어마어마하게 주둥이가 넓은 가마솥에 쏟아지면

펄펄 끓던 솥에서 면들이 소록소록 솟아오르는 순간

벌겋게 달군 쇳대(지금 생각해 보니 대형트럭=도락구, 겹판 스프링 조각)를

첨벙 담그면 �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면을 꺼내

장어 육수를 넣고 튀김 가루를 얹게 돠면

그 유명한 신신옥 튀김 우통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벌겋게 달군 쇳대를 끓는 육수에 넣는 것은

신신옥만의 노하우인 셈이었다

그렇게 하면 장어의 비린 맛이 사라지고 깔끔하고 고소한 맛을

고스란히 살릴 수 있다는 전언.

ㅋㅋ (비밀?)

 

시장의 길목까지 늘어선 손님들을 비집고

당당히? 뒷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었던 어린 시절도 그랬지만

동네 꼬마들이 이 우동을 찾을 때면

투박하기도 하고 금속성 파열음처럼 들리기도 했던

박관옥 어른의 이북 사투리

"애들 우동 더 주라!" 한 마디에 입 꼬리가 귀에 걸리기도 했던 기억

 

경주로 수학여행하고 돌아온 날

저녁을 넘겨 늦게 도착했던 국민학교 6학년 때는

어머니께서 시켜준 우동을 먹고 탈이나

밤 새도록 뒷간을 들락날락 했던 일도 기억이 났다

 

신신옥 우동에 대한 입소문은 굉장했다

대전을 비롯해, 부평...

요즘 말로 짝퉁 신신옥이 판을 칠 정도였으니 말이다

 

진우 형이 전수 받은 비법은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여전한 그 맛 그 솜씨로 건재하고 있음이 마음 뿌듯해져온다

 

박관옥 어르신은 아버지와 동기생이시다

요즘 들어서 기력이 달려 끌차에 몸을 의지해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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