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 이종구-
사랑의 막내여
네 다섯 형들이 앉았던 자리
너 끝으로 앉아
윗 형들이 남겨 놓았던 물 빛 같은 사랑
빨아 먹고 태어났구나
우리는
한 어머니의 몸을 빌어 태어났으니
그 어떤 칼날에도 흩어질 수 없는
각자 다른 형태로 또 하나의 한 몸이니
넌 마지막 찰흙뎅이 한 움큼 쥐고
단단히 따라 오너라
그러면 우리는
너를 위하여 보이지 않는 불을 지펴 놓고
끝까지 버텨 갈 수 있는
어느 가맛골 문중의 소산처럼
단단한 질그릇 한 점
희망으로 바라 볼 것이리
사랑의 막내여
네가 빨아 삼켰던 어머니의 젖줄은
네 형들이 묻혀놓았던
피보다 더 진한 사랑의 숨결이었으니
너는 결코 외롭거나 쓸쓸할 일 없으리
네가 최초에
힘껏 빨아제꼈던 어머니의 젖줄
우리가 채워주리
너의 빈 가슴을
투병
-이종구-
위장이 뒤틀려 온다
돌멩이라도 삼킨 듯
꼬여대는 창자가 곤욕스럽다
기침이 난다
여린 살점을 흔들어대듯
혹독한 진통
이 고독한 전투에서
견뎌야겠다
두 눈 부릅뜨고 안간힘 쓴다
앓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
새삼스럽다
화끈거리는 이마의 열기
혼미한 의식 속에
무심했던 아내의 얼굴
아이의 얼굴
늘 부족함으로 대했던 부모의 얼굴
형제 친구들의 얼굴
이 세상 만나고 헤어지며
무정함만 안겨줬던 인연들
빚 갚고 가야할 얼굴들
질퍽한 수건 이마에 얹고
끙끙거리며
내가 굴복당한 후에야
뒤늦게 뒤늦게
그 얼굴들 더듬는다.
<투병 전문>
다섯 째 형은 전화를 걸어 놓고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올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이진 않았지만
올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피를 나눈 형제들 만이 가질 수 있는 모종의 육감 뿐이었다
제일 큰 형님께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짜식이......짜식이.....
다섯 째 형이나 큰 형님이나 동어반복 만을 외쳐댔을 뿐
서로 말을 잇지 못했다
다만, 셋 째가......셋 째가.....라고 밖에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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