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사는 외톨박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자의 죽음

濟 雲 堂 2008. 12. 18.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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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

 

                                      - 이종구-

 

 

사랑의 막내여

네 다섯 형들이 앉았던 자리

너 끝으로 앉아

윗 형들이 남겨 놓았던 물 빛 같은 사랑

빨아 먹고 태어났구나

 

 

우리는

한 어머니의 몸을 빌어 태어났으니

그 어떤 칼날에도 흩어질 수 없는

각자 다른 형태로 또 하나의 한 몸이니

넌 마지막 찰흙뎅이 한 움큼 쥐고

단단히 따라 오너라

 

 

그러면 우리는

너를 위하여 보이지 않는 불을 지펴 놓고

끝까지 버텨 갈 수 있는

어느 가맛골 문중의 소산처럼

단단한 질그릇 한 점

희망으로 바라 볼 것이리

 

 

사랑의 막내여

네가 빨아 삼켰던 어머니의 젖줄은

네 형들이 묻혀놓았던

피보다 더 진한 사랑의 숨결이었으니

너는 결코 외롭거나 쓸쓸할 일 없으리

네가 최초에

힘껏 빨아제꼈던 어머니의 젖줄

우리가 채워주리

너의 빈 가슴을

 

 

 

 

 

 

투병

 

                                        -이종구-

 

 

위장이 뒤틀려 온다

돌멩이라도 삼킨 듯

꼬여대는 창자가 곤욕스럽다

 

 

기침이 난다

여린 살점을 흔들어대듯

 

 

혹독한 진통

 

 

이 고독한 전투에서

견뎌야겠다

두 눈 부릅뜨고 안간힘 쓴다

 

 

앓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말

 

 

새삼스럽다

 

 

화끈거리는 이마의 열기

혼미한 의식 속에

무심했던 아내의 얼굴

아이의 얼굴

 

 

늘 부족함으로 대했던 부모의 얼굴

형제 친구들의 얼굴

 

 

이 세상 만나고 헤어지며

무정함만 안겨줬던 인연들

빚 갚고 가야할 얼굴들

 

 

질퍽한 수건 이마에 얹고

끙끙거리며

내가 굴복당한 후에야

 

 

뒤늦게 뒤늦게

그 얼굴들 더듬는다.

 

 

<투병  전문> 

 

 

 

다섯 째 형은 전화를 걸어 놓고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올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이진 않았지만

올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피를 나눈 형제들 만이 가질 수 있는 모종의 육감 뿐이었다

제일 큰 형님께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짜식이......짜식이.....

다섯 째 형이나 큰 형님이나 동어반복 만을 외쳐댔을 뿐

서로 말을 잇지 못했다

다만, 셋 째가......셋 째가.....라고 밖에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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