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사는 외톨박이

어여쁜, 너무나 어여쁜

濟 雲 堂 2008. 2. 24. 00:17

사범학교 다닐 적 그녀,

 

봄 바람이 불면

꽃잎 휘날리는 데로

웃음을 띄워 보냈다

 

가지 많은 대추나무에 행여

달 빛이 이지러지는 게 안타까워

옆치로 옮기다 보면

어느새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궂은 시절이었을, 1923년에 태어나 애오라지 그리움을 키우며 살았단다

그녀의 소녀 적 시절의 사진을 들여다보니

마음 한 구석에 일말의 경련 같은 게 일었다

곱게 빗어 뒤로 땋은 머리

똘망똘망해 보이는 눈망울

하현 달처럼 선이 곱게 휘어진 눈썹

 

영락없이 한 눈에 반했을 법한

그 시절의 어린 사내 놈으로 돌아간

나는, 심장이 벌렁거리고 숨통이 막힐 듯해 기어이 말을 잇지 못했다

경성 사범학교 시절에 찍은 사진이란다

 

칠 십년 전의 모습 

아마, 그 때 내가 태어났더라면

연애하고 싶어 안달박달 가슴 졸이며

몇 날 며칠을 연서를 보내고 또 보내고 있지 않았었을까

 

우연찮은 기회에 다시 찾아간 그녀의 작업실에서

선듯 내보여 주시는 한 장의 사진

작업실을 혼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넓은 크기였음에도

보여주셨던 사진 한 장에 매료돼 그 넓은 공간이 꽉 차 보이게 하는

놀라운 마법을 그녀는 서슴지 않고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색종이를 예쁘게 오려서 붙인 낡은 천장, 신발장 손잡이, 창문 틈, 돌 계단 등등

5층 짜리 건물 전체를 손수 꾸며 색감과 아기자기한 생동감이 넘치는 구조로 만들어 낸 것을 봤을 땐 나의 존재감이 연못의 수초처럼

아련히 떠 있는 착각에 빠져들 정도였었다

특히 정문에 나 붙은  '평안 수채화의 집' 간판은 거의 환상적이었다

부군 되시는 고(故)유영호 박사 님의 '평안의원' 현판을 뒤집어서

새겨 넣은 것이었는데 유고를 막론한 존재의 거대한 틀에 일체감이 엿보이는

기지가 감동의 도가니였다

 

35201

아리따운 여든 여섯 살,

 

박정희. 선생님의 불리워짐은 우리나라 점자 창안자인 송암 선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송암 박두성 선생의 둘 째 따님으로 살아온 평생과 일선 교육자이며

예순의 나이에 화단에 이름을 올린 늦깎이 화가, 게다가 다섯 자녀의 어머니,

가난한 환자의 대부라 칭했던 유영호 박사 님의 지어미로서도 그 이름은

옥석 같이 곱기만 하다.

 

 

~~~~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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