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저녁에
-정 송 화-
시계 그림자에 얹혀
하루를 비우고 돌아오는 길
산마루마저
어둠에 섞이고 나면
깊은 가을
홀로 남은 풀벌레가
나직하게 울고 있다
다가오는 추위가 두려워
혼자 울고 있다
늦가을 저녁에
<전문>
며칠 전, 시인의 출판 기념회가 '시 다락방'이란 작은 공간에서 열렸다
예순 일곱 번 째 맞는 생일에 맞춰
일곱 번 째 책을 상재하는 기념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낯 간지럽게 뭘 하느냐는
시인의 손사레를 기어이 뿌리치고
막무가네로 만든 자리였다
다행이었다
무뚝뚝하게 일관했던 표정이 풀리면서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의 입담이 넘쳐 흘렀고
돌연 입답은 수다로 돌변해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당신이 살아온 생애와
참석한 사람들과의 공감대
그리고 전후 세대들이 겪었던 여성적 삶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작은 공간을 후끈하게
말씀의 잔치로 바꿔버렸다
광야의 노래 1982
행복한 농사꾼 1984
이야기 속의 이야기 1988
어머니를 위한 성가 1989
달개비 꽃 1992
이루다네 꽃 나무1999
그리고
청개구리 일기장2008
거의 십 년 가까이 절필하다시피 살림과 아이들 한글학교에 몸담으면서
간간히 남긴 글들을 모았다고 했다
문장이면 문장
솎아내는 단어면 단어에 원숙함이 농축돼 있는
시집의 초고를 받아들고
어줍잖게 발문이랍시고 써 드렸다
물론 부탁의 말씀이 있었고
과연 그럴 자격이 있냐 해서 일찌감치 고사를 했건만
느닺없이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헌데
위 시의 전문이 내가 읽어내려갔던
내용과 달라 의아해 하는 걸 보시더니만
"문장이 너무 쓸쓸해 보인다며" 대뜸 바꾸셨다는 후문이다
'남은 생애가 두려워'를
'다가오는 추위가 두려워'로 바꿨다는 말씀이다
말인즉
"내가 그렇게 써 버리면
신랑이 쓸쓸해 할 것 같아서..." 라는 이유에서 였다고...
웃음...
서로 손바닥을 마주 치면서
왜 그런지를 너무도 잘 알기에
시 낭송을 하다말고
그냥 마구 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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