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修能 小悔

濟 雲 堂 2007. 11. 15. 21:44

 

마음 편히 가지라 주문했으면서도

하나도 잠을 이루지 못했음


열 시 되면 자라 해놓고도

네 시가 넘도록 뒤척이다가

그냥 눈을 뜨고 말았음


잘 살펴보고 제대로 칸에 맞게 답을 쓰라,

덤벙대지 말고 오늘 만큼은 차분하게 보내라

말 해 놓고도

오히려 안절부절 못하고 있음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토끼 새끼처럼 깡충깡충

친구랑 헤헤거리며 뛰어 들어가는

추리닝 차림의 딸이 못내 안쓰러운 엄마의 한숨을

전해들은 오전  일곱 시 이십분


어제 설사기가 있다며 불안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아른아른

지사제라도 미리 먹여둘걸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로

도시락으로 싸간 과일과 호박죽이

싸늘하게 식어있으면 어쩌나


유난히 추위를 잘 타는 데

교실 난방은 잘 작동 되는지

발은 또 시리지 않은지


엿이며, 초콜릿, 찹쌀떡 등이 들어 있는

선물상자 스무 너 댓개를 받아들고

좋아라, 하며 피아노 위에 올려놓고는

주섬주섬 맛보던 모습


저녁 여섯 시 반이 되자

익명의 토끼 새끼들과 십구 년간 길러온

낯익은 토끼 새끼가

놀 거 다 놀고 나온 놈처럼

재갈대며 나오다가 내 얼굴 보더니

환하게 웃어주고 있음


시험 끝나면 짜장면 사달라는 약속

내친김에 찹쌀 탕수육을 덧대기로 시키고

환하게 웃던 배후에 대해 얘기를 듣는다.


오늘 이후로 웃음과 회한은

중국집 짬뽕처럼 일상 속에 섞여 녹아날 것이고

젊음은 그렇게 시작돼

중년이 될 때까지 근근이 이어진다는 것을

차마 말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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