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가슴이 안내하는 길

濟 雲 堂 2007. 11. 2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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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옮기는 족족

신발코가 가리키는 방향이 목적이 된다

머리로 걷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걷는 길이 그렇다

 

한 걸음을 떼면

어느 한 존재감으로부터

그 한 걸음은

그 한 걸음 만큼 멀어진다

 

요즘 가죽포대에 담겨 있는

내용물들이 조금 버겁다는 것을 실감한다

아침 식사를 거르다보니

열심히 일하고 난 점심무렵에는

밀려오는 졸음에 복갤 때가 많아진 것이다

 

화장실 거울에 내비치는 모습이 꼭 스모 선수같다

이목구비는 나잇살 만큼 적당한 조건부 얼굴을 지녔으되

몸통을 비롯해 아래로 눈썰미가 내려갈 수록에

어, 저 게 아닌데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무래도 저 거울은 스무살 적 추억에 사로잡힌

나르시소스의 환각을 비춰주는 요지경인가 보다

 

팔자(八字)로 걷는 모습이며

머리카락 휘날리고 가슴을 앞으로 쭉 내밀어

당당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이, 누군지... 알겠더라구요... 라고 말꼬리, 눈꼬리를 내리며

�조리듯 생략되는 말들이 

화장실 거울을 보고

확실히 알아차리게 되었을 때

 

웃기게 변했군

스모 선수야

아니, 난장이 똥자루야 라고 정의 내리고 말았다

 

한 걸음을 떼고 난 후에 느끼는

존재의 이질성에 학을 떨다가

좀 더 걸으니

어느 틈에 그랬냐는 듯 다시 마음이 평안해지는

이 놀라운 변화를 그냥 즐기기로 했다

 

길을 걸을 땐 역시 머리로 걸어선 안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온몸으로 걸어야 한다는 것과

이해관계에 집착을 해서도 안된다는 걸 말이다

 

그런 와중에 나를 즐겁게 하는

장면을 발견한다

다소 생뚱맞은 그림이지만

본질과 현상, 이상과 과거 시점이

절묘하게  표현된

그냥 그림일 뿐이라는 것

한참을 걸은 뒤에 비로소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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