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목(都市遊牧)

기이한 인연 그리고 주례사

濟 雲 堂 2007. 10. 27. 23:48

지난 4월 어느 날이었다.

그날의 기록 가운데,

 " 시야가 휘청거릴 정도로 햇볕은 좋았다.

작가들 배 주릴까봐 쫄면의 유혹을 마음에 포장해서 올라갔더니

다들 요상스러운 싸구려 '부페'를 먹으로 갔단다. '부페'인지 '부패'인지 잘 모르겠지만...^^

김창기 선생 만 타임캡슐을 용감히 지키고 섰는데

천(川)은 천인데 인천이 아닌 부천에서 왔다고 하는 두 연인에게

김 선생이 타임캡슐(쭉쭉이 캐�통)을 건네준다 ㅎ ㅎ

쭉쭉이? 하마 이 걸 워째~ 이 주인공들이 잉태? 기념으로 찾았다는 자유공원

타임캡슐 앞 마당에 요상스러운 기운이 감돌았지만 앞으로 잘 살겠거니, 결혼도 하겠거니...^ ^

어쨌든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현재의 자유가 그저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면서... "

 

이런 내용을 담은 적이 있다. 그후 여섯 달이 지나고

이 두 벗이 내게 오더니만 드디어 결혼하니

대뜸 주례를 서 달라는 주문이다.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몇 차례 고사했지만 하도 진지하게 부탁하는 통에

허락하고 말았다.

 2007년 10월 27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사를 해야 하는데 딱히 해 줄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결혼식을 가나 대동소이한 말들에 식상해 있던 터라

여간 고민 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몇 가지 얘기를 간단히, 빠르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정리해서 두 사람과 하객들을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으로 유도해 보자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다 써 놓고 보니 나도 별 수 없이 대동소이의 반열

그 한 가운데에서 다른 분들의 주례사와 거의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역시, 좋은 길은 포장만 다를 뿐이지

길은 길일 따름임을 슬그머니 깨닫는다.

 

 

주례사.

 

 

 결혼은 밥을 짓는 일입니다. 둘이서 함께 만들고, 함께 나누자는 약속입니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확인되고, 법치 사회 속에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가도 되는 지에 대한 증거로, 오늘의 결혼식은 두 사람에 있어서 어느 때보다 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신랑 이동철 군과 신부 김성진 양은 이러한 약속을 성실히 지키겠노라고 여러분 앞에 당당히 섰습니다. 또한, 양가 혼주님과 하객께서는 이 결혼식의 증인으로서 축하드리러 기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참석하신 것입니다.

 

 결혼은 비빔밥을 함께 만들어 먹고 살겠다는 의식입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이 두 사람이 한 그릇의 비빔밥이 되기 위해서, 하나의 생명, 하나의 운명공동체가 되고자, 그 동안 제각각으로 살아온 제 자신을 버리겠다는 다짐을 하려고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제 자신의 특성들을 버리지 않은 채 만들어지는 비빔밥은 이 세상에서는 먹을 수 없습니다. 결혼 생활은 충돌의 연속입니다. 새로운 생활과 문화의 만남인 것입니다. 가족과 가족과의 새로운 유대를 결성하는 것이고, 이웃과 이웃과의 새로운 만남임과 동시에 이미 알고 있는 상대방과 살과 영혼을 맞부딪치며 살아가야 한다는 실제상황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는 늘 발생합니다. 늘 좋은 일만 생길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일인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함께 신혼살림 했을 때 만들어 먹던 비빔밥을 정신을 생각하며 제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빚어낸, ‘조화로운 섞임’의 가르침을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결혼은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사람이라는 단어가 삶과 앎이라고 하는, 각각의 단어가 부딪치고 깨지고 허물어진 상처를 디디고 새롭게 태어난 말이 바로 ‘사람’이란 단어인 것입니다. 오늘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 이동철 군과 신부 김성진 양은 결혼을 했다. 라는 과거형에 얽매이지 말고, 결혼 진행형 또는 멈추지 않는 배려 속에서 서로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북돋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아직 두 분에게는 많은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남 보다 더 노력하는 마음으로, 타인과 비교하기 보다는 서로의 노력과 결실이 자라나는 모습에 감동해 하는 진솔한 마음으로 금슬 쌓아가는 어여쁜 부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결혼은 덕을 쌓는 일입니다. 덕이라는 글자를 세심히 뜯어보면 ‘사람 열 네 명이 한 마음’이 되어야 비로소 덕이라는 글자가 완성됩니다.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양가 부모님을 귀하게 모시고, 서로에게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벗들과 이웃들 그리고 차후에 태어날 새 생명에 대한 경외감 등에 하나 소홀함이 없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덕’을 행하는 마음입니다. 나아가 우리사회에 귀감이 되어 슬기롭고 조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신랑 이동철 군과 신부 김성진 양을 오매불망 사랑으로 키워주신 양가 부모님과 이 자리에 하객으로 참석해 주신 여러분의 건강과 행운이 깃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주례사를 갈음하고자 합니다.

'도시유목(都市遊牧)'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리풍경  (0) 2007.11.02
재개발 지구를 지나며  (0) 2007.10.29
사라지는 것들 -한국유리-  (0) 2007.09.09
월미도 호텔 濱  (0) 2007.08.18
월미도, 얼미도, 어을미도  (0) 2007.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