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목(都市遊牧)

월미도, 얼미도, 어을미도

濟 雲 堂 2007. 8. 15. 23:55

 육지에서 보면 영락없이 섬이고

막상 다가가 만져보면 섬의 모습은 사라져

어느 틈엔지 육화된 섬 하나가 눈에 맺힌다

 

월미도

이 섬을 찾는 사람들은 한결 같이 월미도라 부른다

앗! 차! 나 또한 '이 섬..'이라 했다

수십 년을 그렇게 불렀으니 잇니 배긴 습관을 단숨에 떨쳐버리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사서를 뒤적이다 보면 월미도라는 이름 보다는

'월성' '어을'이란 단어가 곧잘 등장하는 이 섬의 정체가 늘 궁금했다

월성은 말 그대로 月星이고, 어을은 孼의 풀이 얼(서자)을 어을이라 했음이다 

현재의 월미도라는 이미지와 얼른 연결이 안 되는 이름들이다

 

한번쯤 월미도를 찾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월미도 방문을 그닥지 않게 여기는 수가 많다

하지만 이 섬을 늘 응시하거나 그런 기회가 많은 사람들이 볼 때는

인천, 아니 우리나라  근세사와 근현대사에 있어서

매우 연관성이 많은 곳이란 것을 금새 알아차린다

 

현재는 정식 도로로 포장돼 있지만 사십 년전 만해도

먼지가 폴폴 날리는 비포장 도로였었다

그나마 그런 도로를 자전거 타고 달렸고

낚시를 하러 다녔고 헤엄을 치러 다기도 했던 곳이

월미도였다

 

다만 월미도였다

다가설 수 없는 섬이었고

총부리를 들이댄 병정들이 밤새도록 섬을 지켰고

가끔씩 두려움을 느끼게 외쳐대는 암구호가 곳곳에서 들리곤 했던

치외법권지역과도 같은 군사지역이었다

 

월미도를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논하고 오르게 되어

황조롱이, 다람쥐, 청설모, 야생화된 토끼...

여러 이름을 일일이 댈 수 없을 만치 다양다종의 식생들이 분포돼 있다는

최근의 조사가 우리의 귀를 채우던 것이

불과 수 삼년 전의 일이었던 점을 감안 할 때 이 섬은

다만 월미도였다

금산(禁山)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것이, 세월이 좋아져서인지 아니면 정치와 국제 정세가 나아져서인지

지금은 시민들과 방문자들이 자유롭게 오를 수 있는 곳이 되었다

만감이 교차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는 상황이다

 

근세시대에는 임금이 강화로 피신하던 경로 개설에 따른 요구로

행궁이 설치되었고

근대시대에는 외국의 이양선들이 자주 출몰해 통상하자고 압력을 넣고는

제멋대로 '로즈 아일랜드 Rose Island'라 부르기도 해

이미 서양 고지도에는 그렇게 기입됐던 곳

근대 개항을 맛본 시기엔

러시아 증기선의 석탄 창고, 미국의 스텐다드 석유회사의 유류창고

일본의 교묘한 점령과 유원지 및 포대설치

해방 이후에는 미군의 점령을 필두로 해서 군사화가 고착되기 시작터니

한국전쟁 땐 북한군의 점령지로

전쟁이 끝나고나서는 한국군의 군사기지로...

그렇게 단절된 수 백의 성상을 겪은 섬이었기에

만감의 교차는 오히려 필연적이자 숙명적인 언감으로

내게 다가오던 섬이질 않았던가

 

장마가 끝나고 알 수 없는 우기가

정식적으로 명명되지 않은 질곡의 우기가

보름이 넘도록 흩뿌려지는 오늘 광복절에

다시 그 정체불명의 비를 맞으며 월미도를 바라보기란

성장의 몸살을 치르는 여덟 살 아이처럼 마냥 즐거웠던지

알 수 없어요, 알 수 없어요를 남발하는 만해의 싯구처럼

섬을 바라다 보니 가슴 한 켠이 처연해 옴을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1908년 일본에 의해 목조 다리가 생겼고

1921년에는 유원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목조 철교와 길을 통해 육지의 일부가 되는 신고식을 치르게 된 것이다

유원지가 그 때 만들어졌으니 오늘날의 유원지 개념을 가진 월미도의 놀이 역사도

꽤나 긴 셈이 되었다

그런데 명칭이 문제다

얼 孼이란 단어는 서자라는 뜻이거니와

월미도라 불리기 이전의 어을미도는 분명 '얼'이란 단어를 씀직하였겠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인천은 썰물과 밀물의 차가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거다

물이 빠져나가던 썰물께에

이 섬은 간혹 육지가 되었고 밀물께는 섬이 되었다는 전거가 상당히 등장했음이

불현듯 다가온다

 

참으로 지난한 운명을 지닌 섬이다

섬의 운명도, 육지의 운명도 아닌 이 때는 섬, 저 때는 반쪼가리 육지

뭐, 그런 처지였으니 육지로 만들기란 떡주무르듯 어렵사리는 아니었으리라

 

오늘 광복절에 월미도를 다시 본다

사진 밑자락에 휘날리는 태극기 옆 분홍 양철 지붕이 옛 시절의 무소불위의

청나라  영사관이었다라고 하면  뭔가 냄새나는 글이라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고...

오욕으로 점철된 먼 섬이 눈에 맺히고 있다

차후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월미도...

 

그나저나 이 비는 언제 그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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