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목(都市遊牧)

숨어 있는 밥솥

濟 雲 堂 2007. 6. 28. 00:57

 태조 왕건이 건국을 기념해 지었다는 개태사의 철확은 아닐지라도

그에 버금가는 거대한 솥이다

견고성와 안전성 그리고 실용성 등을 따져 봤을 때

현대의 그 것과 별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정말 다부지게 만들어진 밥솥이다

수 백 명의 식사 거리를 감수해야 했을

이 근대 시대의 밥솥을 보면서

격정적이었을 당대의 상황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 근대 시기는

민족적 수난기이자 국가적 자존심이 땅에 곤두박질 쳐지는

암흑의 세월이었다. 그러한 진통의 이면에는

세계사적 조류인 근대라는 너울이 우리들 가까이 울렁이고 있었으므로

어느 민족이건 어느 국가건 간에

피해갈 도리는 없었던 상황이었다

 

항구가 들어서고 공장이 생겨나고

사람들이 모여들고, 문화가 생겨나고

교육시설, 종교시설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근대라는 상표가 꼬리를 물면서 인천에 발을 내딛었던 시기였다

민족의 침탈사가 생략된...

 

설사 인천만이 그러한 과정을 겪었겠냐마는

특히라는 강조점을 인천에 부여해야 하는 데에는

이미 근현대사를 다루는 학계가 인정한 바가 아닐런지

 

위 사진은 최신 시설에 밀려나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을지도 모를

**방적회사 식당에서 사용됐던 밥솥이다

 

굳이 밥솥이라 명명한 이유는

이 식당에 이와 같은 크기로 두 개의 솥이 있었는데

사용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이 솥이 유난히 스팀이 잘 들어오고

조절하기 좋아 밥을 하는데 주로 쓴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다른 솥은 국물이라든지 물을 끓이는데 주로 사용했다는데

같은 솥일지라도 스팀 시설이라든지

배관의 구불기에 따라서 아마도 그렇게 사용했었을 것이라 짐작하지만

역시 사람의 손길에도 정이 붙어다니는 고로

애정어린 눈 길 쏟는 것이 일도 수월히 진행되는가 보다 

 

며칠 전 이 식당엘 가보니

스테인리스 솥으로 바뀐 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행여, 이 솥의 존위가 어땠는지

묻지 못했다. 이 지상에서 영원히 존재해야 할 것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런 잠정성에 시대와 민족적 상황 등등을

제고했을 때 벌어지는 내재적 결론을 합리적으로 끌어내기에

너무도 벅치고 부족했던 개인적 만감들이

밥 솥 안으로 무차별하게 쏟아져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