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나와 배다리 1 <소년기>

濟 雲 堂 2007. 5. 13. 22:42
-관통도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창영동 배다리 일대를 생각하며-


 나는 배다리가 배가 닿았던 다리가 있었다고 해서 ‘배다리’인지, 배의 상판을 덧대서 다리를 만들었다고 해서 ‘배다리’인지, 아니면 배때기의 ‘배’와 사람 다리의 ‘다리’를 해학적으로 표현해서 ‘배다리’라고 했는지 아직도 그 정의 내림에 대해서 의문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다. 오랜 경험을 겪었던 동네 어른들의 하마평조차도 백인백색의 논지를 펴고 계시니, 어느 게 옳고 그르다고 함부로 말하기가 꽤나 조심스러운 지명유래가 바로 ‘배다리’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배다리라는 지명은 제법 오랜 세월의 더께를 걸치다보니 윤색되고 탈색도 되어서 점점 ‘옛 사랑의 희미한 그림자’ 노랫가락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과거의 무조건적 찬미로 흐르는 경향이 있지나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릴 적에 배다리는 내게 금은보화는 아닐지언정 만화가게를 출입하거나 주전부리할 정도의 쓸 돈을 적절히 공급해(?) 주던 굉장히 유익했던 공간이었다. 특히 억수 같은 비가 오고 난 다음 날에는 어린 마음을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아마 이 얘기가 밖으로 새나간다면 나에 대한 편견이 새롭게 구축될 것이란 우려와 더불어 가슴에 꼭꼭 숨겨둔 모종의 이중장부를 지니다 들킨 사람처럼 회원님들과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내내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앞서서 쓸까 말까 잠시 주춤거린 심사가 있었음을 우선 고백하기로 한다. ^ ^


 허투르게 돈 쓰는 일에 대해 매우 엄격했던 부모님은 육형제 중에 막내인 나를 끔찍이도 생각하시면서도 용돈에 관해서는 에누리조차도 없으셨다. 필요한 것, 꼭 써야할 것에 대해서만 돈을 주셨기 때문에 만화가게에 목말라하고 호떡이며 오뎅, 길거리 좌판에 펼쳐진 해삼장수 오징어 데침 등등 먹고 싶은 게 무진장 많았던 나를 늘 허덕(?)이게 만드시곤 했었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진 다음 날. 지금은 별반 문제될 게 없을 정도로 배수가 잘 돼나서 ‘배다리 하면 침수’라는 등식으로 연결이 안 되지만, 내가 초등학교 댕길 적에는 배다리는 곧 바다의 일부다 할 정도로 물의 역류 현상이(특히 사리 때) 잦았고 조금만 비가와도 무릎까지 물이 차는 상습침수 지역이었다. 여하튼 비가 멈추면 싸리재 치맛자락 쯤 되는 철도다리 부근부터 막대기 하나 들고 물속을 뒤지기 시작하면 드디어 내가 원했던 그 물체가 슬슬 보이기 시작했고, 동무들과 한 패가 돼서 그 것을 건져 올리는 일을 벌였다. 간혹 살아서 꿈틀거리기라도 하면 슬그머니 모가지를 누르는 전문성까지 발휘하기도 했었다.


 뱀. 배다리의 뱀은 바로 우리들의 치기를 적당하게 채워주는 재원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삼화고속 버스 회사가 있었던 건물에서 위쪽으로 두 번째 거른 집이 뱀 집이었기 때문에 제품(?)에 손상이 가면 값이 떨어진다는 것을 안 나와 동무들은 될 수 있으면 조심스레 작업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한번은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역시 지금은 사라졌지만 창영동 헌책 방 거리 초입에는 순경 모자를 본떠서 만든 아담한 창영 파출소가 있었는데, 그 곳에 근무했던 어느 순경은 우리가 잡은 뱀 전부를 빼앗으려 해 양손에 각각 뱀 대가리만 붙잡은 채 줄행랑을 치기도 했던 사건이다. 당시만 해도 아버지보다도 무섭고 두려워해야할 존재가 순경이었는데, 같은 시절 같은 맥락에서 벌어졌던 줄행랑 사건의 연장이었을 거다. 아마, 그 해인가 전 해인가 정확치는 않지만 월미도 뚫린 철책을 넘어 칡을 캐러 갔다가 경계병에게 몽땅 다 빼앗겨버리는 사건을 겪었던 터라, 당시에 우리의 도망은 필사적이었을 거란 생각이고 더불어 뱀 팔아서는 신포동으로 넘어와 미니 당구대가 앙증맞게 놓여 있던 이층집 만화가게(옛 어물전 터=모 와이셔츠 가게)에서 만화며 오뎅, 덴뿌라 등을 여한 없이 먹고 즐거워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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