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사랑하는 친구에게

濟 雲 堂 2003. 12. 5. 23:13
-사랑하는 친구에게-

추위가 닥쳐오면
나는
자네가 부럽다.
일 년 열두 달
몽롱하게 두개골이 익어가는
열대의 야자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자네가 부럽다.

나도 홀랑 벗고
트렁크 빤쓰 옆으로 삐죽 튀어나올지 모르는
부랄께 쯤에다가 손부채를 흔들고 싶다
움직이는 족족 새어나가는 땀을
손가락만한 구멍을 뚫어 마시는
‘마플라오’ 한 모금
“캬아~ 씨벌!” 이라고 내뱉은 최고의 찬사 뒤에
무진장한 외로움이 등 뒤로 움살거렸던
친구야

그러나
투명한 겨울 앞에 서서
나의 꿈 보다 더 지독한 풍경 하나
은행나무,
꺾이고 부러졌어도
제 자식 같은 가지들은
죄다 하늘로 뻗게 만드는
우직한 본능
나의 꿈 보다 더 지독스런 풍경 둘
어떻게 하면 외투하나 더
어찌하면 속꼬쟁이 하나 더
걱정해야만 했던 이 겨울날에
나뭇잎 하나 걸치지 않고
훌러덩 벗어던져버린 자유공원 나무들

난 아직 멀었다
난 아직 멀었다
공(空)을 득(得)하여 천공(天空)으로 가기에는
이 지상에서
체공시간(滯空時間)이 너무나 짧다
이 겨울이 너무나 보잘것없다
하여, 친구야
나는
자네가 하나도 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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