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거대한 주름이 접힐 때마다
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우르릉우르릉 우르르릉...
지각한 아이들이 교문을 밀치듯
박차고 쓰러지는 신포동에
비가 내린다.
일찌감치 셔터를 내리던 속옷 가게가
오늘따라 늑장부린다. 오래 묵은,
우산 다발의 먼지를 떨어내고 있다.
어느덧 하늘빛은 암회색
오래도록 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은 배들은
항구에 기대어 회색으로 젖고 있다.
비가 내린다
지난겨울 무너져 내린 천막
뼈마디만 남은 골조를 타고서
비는 그렇게 내리고 있는 것이다.
雨林에서 보낸 이틀은
모든 것을 회색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침나절마다 들려오던 나팔 소리가
허리까지 잠긴 채 반쯤은 어디론가 떠내려갔다
희끗한 머릿결을 쓸어 넘기던
만국공원 노인들도 반은 줄어 있었다
'劍如' 검과 같은 필체
당대의 서예가 '유희강'이 남긴 然吾停
추녀 끝 바닥에는 줄어든 웃음들마져
동강난 채 나뒹굴고 있다
'밤의 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龍宮寺 느티나무 (0) | 2002.05.15 |
---|---|
雨 林 日 記 3 (0) | 2002.05.15 |
진 우 촌(秦 雨 村) (0) | 2002.05.15 |
사랑은 비벼서 먹는 것 (0) | 2002.05.15 |
홍예문을 지나며 (0) | 2002.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