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칼럼

한 여름 밤의 불면들

濟 雲 堂 2012. 8. 16. 22:05

한 여름 밤은 글 쓰는 데에 최적의 시간이다. 땡볕을 피할 수도 있지만, 이른 아침부터 한 낮에 이르도록 불 지핀 보일러의 열기가 비로소 가셔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밤이어도 더운 건 마찬가지다. 선풍기를 바짝 끌어안는다 해도 좀처럼 위로가 되지 않고 멱을 감아도 시원한 느낌은 잠시일 뿐, 온 몸의 구멍에서 쉴 새 없이 분비하는 원초적 체액 때문에 이내 불쾌해 지고 만다. 그래서 한 여름 밤은 그저 ‘글 쓰려고 마음먹기’에 가장 좋은 시간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져본다.

 

조용하고 깜깜한 공간 한 귀퉁이에 빙하의 세계를 사수하고 있는 발광코드 -20〬C를 읽는다. 얼음 덩어리 같은 설기 떡이 작은 폭풍처럼 열대야를 흡수해갈 무렵, 아지랑이 같은 영혼이 접시 위에 펴오르고 있었다. 1975년, 둘 째 형수가 혼수로 들여온 금성냉장고의 기억 너머, 나눠먹지 않으면 안 될 풍속들이 2012년 여름을 상기시키고 있다. 현재 지구가 생산하는 먹을거리는 120억 명이 먹을 양인데, 5초마다 어린아이가 기아로 목숨을 잃는다는 장 지글러의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책이 거꾸로 꽂혀 있다. 친구가 느닷없이 묻는다. “지난 통계인데 말야, 우리나라 일반 가정집 냉장고에 저장된 음식만으로 20일 가량 먹을 수 있다 하데! 자네 집은?”

 

양수리 아니, 두물머리는 모꼬지 명분으로 족히 네다섯 번은 다녀왔고 벽진 이 씨 세보를 찾아, 다산 선생의 매력에 빠져 있을 땐, 누차에 걸쳐 근방을 배회했던 공간이었다. 지금도 있는가 모르겠지만 거꾸로 걸린 간판 <아뜨리에>, 언덕바지에 자그맣게 나앉던 선생의 묘소 그리고 버드나무집...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제자 두 녀석을 수초처럼 건져 올린 그 버드나무집. 유기농 농사를 계속 짓고 싶다는 농사꾼들과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노동꾼들의 대치 상황을 보면서 교집합 되는 이 시대 ‘꾼’들이 두물머리에서 한 데 섞이어 같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적어도, 먹고 살기에 절박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느닷없이 퇴직의 변을 늘어놓았다. 두 새끼 학자금 걱정을 겨우 면했다 싶었는데, 얼떨결에 큰 놈을 결혼을 시켜야할 상황이 되었단다. 그 동안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빡빡하게 살아왔는데, 이제는 혼수준비에 더 큰 목돈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25년 근속했던 직장을 그만 둔다는 말인즉, “장난이 아냐. 빚더미야. 늙다리 되도록 허리 부러지게 일하게 생겼어”였다.

 

‘원님 덕에 나발 분다’는 나팔수의 빽도 빽 있는 사람이었다. 얼굴과 입으로 먹고 사는 정치인의 수하에 있다 보니, 동향과 동창 그리고 동목으로 결합된 중세 길드 조직처럼 죄다 권력의 끄나풀 하나씩을 쥐고 있었다. 친구의 자식을 편법으로 취직시키고, 검증 안 된 제자에게 단체의 전권을 부여하고, 대의를 위해 작은 의미쯤은 무시해버리는, 그 나팔수와 원님 때문에 더더욱 인천사람 꼴이 말이 아니다.

 

며칠 째, 마누라는 진득한 말 한 마디 건네지 않는다. 말복도 지났고 입추도 지났는데, 저녁 밥상머리는 뭔가에 무겁게 짓눌린 채 같은 반찬의 고정출연이 당연한 듯 침묵으로 일관돼 있다. 그 며칠 전, 부리나케 전화가 걸려와 달려갔더니 아들 같은 상대방 운전자에게 욕지거리를 당했던 게 사건의 단초였다. 딴에 제 편을 들어줄 원군으로 불렀건만, 골목은 삼중으로 막혔고 날씨는 불쾌의 정점에 놓여 편들기에 복잡한 상황으로 판단돼 억지로 내몰듯 무마케 한 게 화근이었다.

 

한 여름 밤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불면이다. 불쾌다. 게다가 올림픽까지. 집 안의 문이란 문을 모두 열어 놓았건만 나갈 구멍이 없다. 참매미 말매미 울음소리 달팽이관 울림통에서 거의 떼어낼 무렵, 새벽은 기어코 밝아오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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