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해 넘도록 집필하는 원고는 현재 개점휴업 중이다. 제법 썼다고 자인해보지만 하룻밤 자고 나면 도루묵. 뭐,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보니 원고지 육백여장에서 눈금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다가 아예 멈춰서고 말았다. 원인이 뭘까 생각해보지만 정확히 짚어낼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원인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거나 뼈를 깎아내리는 분석의 칼날은 내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라는 걸 부지불식간에 입력시켜놓았던 고로, 스스로 재검 한다는 것 자체를 불경함으로 여겨 기피했던 탓이 더 컸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반성은 하되 깊이가 없고, 기껏 작심해서 써 볼 의지가 있다 한들 촛불처럼 조금만 움직여도 외부 탓으로 전가해버려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몇 해 전, 인천에서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인천의 대표적 음식인 <짜장면>을 제하로 책으로 펴낸 모 교수로 인해, 집필의 열통에 불씨를 당기게 되었다. 짜장면이 표피적이고 즉물적이고 현상적 상징물이라면, 우주적이고 변증법적이고 운명적이되 이마저 과정적 산물로서 무궁한 변화를 꾀하려는 <짬뽕>이 오히려 인천의 정체감을 드러내주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이다. 인천의 바다, 섬, 산, 근대건축물, 인물, 도시의 성장과정 등, 인천의 마디마디에서 추출된 진액이 마치 <짬뽕>의 탄생 경로와 너무도 유사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개점휴업의 변 말마따나 부진의 너스레를 종합해 보면 ‘외부 탓’이 원인이고, 이를 능력 밖의 일이었음에도 신을 수 없는 양말을 물고 늘어진 강아지처럼 이도 저도 아닌 채 허송세월을 보낸 ‘내 탓’이 무엇보다 컸음을 다시 한 번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일감이 늘어났고, 상대적으로 노동력을 집중해야할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피로감이 잦아졌다. 몇 개 원고 청탁을 받아놓고 책상머리에 앉아보지만, 어느 틈에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퉁퉁 불은 손마디 굳은살이 단단히 말라버려 자판 두드리는 것조차 뻑뻑해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꿈은 웃어른에 맞추고 현실은 아랫사람의 자세로 헤쳐가야 한다는 선친의 처세론은 차치하더라도 모든 게 능력 밖의 일처럼 무력해 보일 수가 없었다. 전에는 잘 했는데 지금은 왜 그럴까는 분명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예나 제나 쫓기듯 마감했고 허둥지둥 일을 마쳤던 게 다반사였다. 웃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가관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럼에도 한 가정을 이제껏 꾸려왔고 몇 권의 저서와 나를 필요로 하는 각종 모임에 결석 없이 참가한 걸 보면 실로 기적에 준하는 행적이었음을 돌이켜 보는 바. 그런데 웬 걸, 이마저 급변하는 삶의 지형도에 꿰맞출 퍼즐 조각이 규격 미달인 채 구닥다리로 전락된 인상을 떨칠 수 없는 거였다.
인천 판도는 달라져 있었다. 인식과 흐름, 정세와 경제가 도시 성장에 맞물려 폭발적으로 몸집을 키우다보니 인천 정체성이니 역사 문화예술 대중적 삶 등을 소박한 지상목표로 삼았던 선배 세대를 아랑곳하지 않고 성장판 만을 덧대려는 게 포착되고 있다. 새 술과 새 부대의 매혹적 선언들에 편승하는 걸 탓할 수는 없지만 능력과 처지와 지역적 성찰 없이 덤벼드는 모습이 모든 걸 집어 삼키는 전설 속 불가사리 같다. 선거판에 나선 사람들이나 각계에서 이권을 움켜쥔 채 전권을 휘두르는 사람들이나 매 한가지로 빤하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 나의 반성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심층적으로 까발려져 공개적인 웃음거리로 왜, 돼야 하는 걸까. 찬바람 부는데, 고교시절 유행하던 ‘너 자신을 알라’를 ‘알라 네 꼬라지’ 아니, ‘알라 니 꼴라’로 바꿔 부르던 철부지적 노래가 느닷없이 왜 떠오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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