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칼럼

신포국제상인 ‘시장의 오류’

濟 雲 堂 2012. 4. 20. 00:05

 

단단해 보이는 나뭇가지에 꽃망울이 맺혀 있는 걸 보니, 느닷없이 마음이 말랑거린다. 아스팔트로 치장된 도로를 오래 바라다보면 울렁증이 생길 정도로 물컹거리게 보여 한 바가지에 길어 올려 질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딱딱하기는 매 한가진데 자주 보고 계속 보고, 상시적으로 보이는 것에 매몰돼 있다 보면 가끔 이런 착시 현상이 생긴다. 그럼에도 이런 증상이 하나도 문제되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필자의 뇌구조에 구멍이 많아 어느 것 하나 진득하게 저장되지 않아서이다. 비워지면 채워지고 느슨해지면 배설되었다가 다시 질끈 동여매지는 이 연속적 긴장감이 생활 전반에 용해되어 무리 없이 자연인으로 살아가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삶이란 틀에서 생각이 박제화 되는 것을 ‘우상’이란 개념으로 도입해 사고하지 않는 삶을 비판하고 있다. 동굴의 우상, 종족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극장의 우상 등으로 나눠 편견과 권력, 집단과 환경 등에 따라 영향 받기 쉬운 인간의 삶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해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말머리를 진중하게 끌어들인 이유는 오랜 동안 경제와 문화적 불균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래시장에 대해서 지자체와 정부가 내놓은 해결방안들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신포시장을 빗대 ‘신포국제상인시장’이라느니 ‘관광형 전통시장’ 한자리 더 추가해서 ‘원단도매상점’들을 유치해 시장을 활성화 한다는 계획 등이 그 것이다. 외형적으로 문제 삼을 것 없는 참신한 발상과 명칭임에 틀림없고 상도(商道)없이 디밀기만 하는 대형유통매장과 기업형 할인매장을 견제해 볼만한 아이디어란 점에서 수긍이 가는 면도 있다. 그러나 신포시장의 탄생과 역정 그리고 시장 곳곳 면면이 등불처럼 존재하는 상인들의 자생성과 자존심에 대해 배려하는 내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들어 있지 않았다. 아울러 인천 시내 포괄적(등록 및 인정) 시장 52군데 6,553개 점포 가운데 겨우 143개 점포 밖에 안 되는 신포시장에 이 같은 매머드 급 선언은 마치 모래 위에 누각을 짓는 건 아닌지 의심의 눈길이 들었다. 생색내기 좋아하고 근사한 꾸밈과 치적을 자랑하는 위정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공약처럼 예쁘게 포장된 말들이 구구절절 담겨져 있지만 도무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내용들처럼 말이다.

 

신포시장에서 태어나 한 번도 적을 옮겨본 적 없고 60년 넘도록 가업을 이어온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과거엔 번창했었고 지금은 낙후됐는데 앞으로 쇄신을 가해 재기하겠다는 내용인지, 아니면 존재해왔던 이력은 무시되고 타 시장의 사례를 적용해 요즘 뜨는 트렌드를 도입해 새 포장을 해야만 한다는 내용인지 얼핏 분간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지자체와 정부의 재래시장 발전 비전의 한계가 드러난 만큼, 느리게 가더라도 세심한 발전 모델을 지속적으로 간구해야할 때라고 본다. 지난 해, 유통산업발전법 시행령에 따라 대형할인점 등에 월 2차례 강제 휴무를 적용했지만 재래시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하나로 농협마트가 어부지리로 득을 봤다는 충청지역 시장 실태는 신포시장의 맹점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몇 몇 점포의 호황이 그나마 시장의 면목을 세우긴 하지만 시장의 진면목은 안정적 거래, 다양성 구비, 인정 넘치는 관계, 깔끔한 환경 등에서 진가가 발휘된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 행정적으로 보탬을 주고, 낡고 헌 장똘뱅이 사고를 정화시켜주는 학계의 상도교육과 글로벌 휴머니즘을 쫓는 기상이 마련된다면, 굳이 ‘관광’과 ‘국제’라는 딱지를 억지 포장하지 않아도 누구나가 바라는 신포시장이 될 거라 믿기 때문이다.

'인천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여름 밤의 불면들  (0) 2012.08.16
행복 찾기  (0) 2012.06.08
연평도 엘레지  (0) 2010.12.27
「인천 근대 문학제」는 무엇을 남겼는가?  (0) 2010.11.01
도시 성장의 또 다른 비밀  (0) 201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