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모든 것이 존재한다고
앙드레 지드가 말했다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나 또한 길 위에서
존재감을 느낀다
회색 창 밖에 개나리
노랑 봉우리 사이사이 진달래
분홍 살빛 벚 혹은 배꽃
홍란의 찔레
적막배후(赤寞背後)의 장미
아아, 접시꽃
헛다리 걸기 부용
무상무취의 무궁화
길을 걷다보니
눈에 밟히는 꽃무덤들이
무덤덤하게 스쳐지나갔다
무덤인 줄 알면서
스러져 죽어나자빠지는 줄 알면서
제 몸이 곧 무덤인 줄 알면서도
나무는
꽃을 다시 피어 문다
궂은 장마
먹장 구름을 거둔 한 여름
건드리면 스륵스륵 반응을 보일 것 같던
신경초처럼 생긴
자귀나무마저도
그대 생각을 많이 한 날,
이 세상은 온통 꽃 천지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나 또한 무덤 밖 세상으로
꽃을 피우고 싶은
나무라 말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