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가 한 줄 더 늘어났을 것이다. 두툼해져가는 허리 살이 버거워 등걸마다 골은 깊이 패여 나 있을 것이다. 지난 추위의 지루함 혹은 혹독함 때문에 유심히 보지 못했던 나뭇가지들도 분명 한 두 가닥 쯤은 더 늘어났을 것이다. 연일 반복되는 이상 기후 탓에 단맛을 잃은 꽃들도 일찍 폈다가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말머리를 ‘~을 것이다’라고 가정한 데에는, 피치 못하게 찾아드는 세상만사가 예측 불가능한 변화의 조짐을 여럿 보여줘서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볕이 좋게 든 봄날에, 남루해진 몸을 녹이는 자유공원 초목들을 허리 긴 나무의자에 앉아 바라보다가 불현듯, 봄이 찾아 든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열기를 차단하는 그늘의 너비가 넓어질수록 나무 밑둥치 잔디가 더 이상 자랄 수 없다는 것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초록은 동색이고,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곳 없는 심정이 누리 곳곳을 헤집을 무렵. 백령도 앞 바다에선 산 자와 죽은 자의 엇갈린 소식들이 거친 파랑을 타고 들려오고, 자연과 생명의 강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했던 무리들이 그럴싸하게 콘크리트로 포장하면 더 훌륭한 자연과 강의 생명성을 더 연장시켜 줄 것이라는 낭설이 유포되었다. 이른바 선진국이라 일컫는 나라들이 앞 다투어 댐을 부수고 시멘트로 만든 일체의 인공물을 강물 밖으로 거둬들이는 이 시점에 느닷없이 삽자루가 떠올랐다. 삽날의 먼 후예인 포크레인이여! 골고다 언덕을 파헤쳐 묻었던 오래된 기억의 되살아남이여!
대저 봄이다. 사시사철 순행으로 찾아드는 봄이어서 기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부조리함의 겨울이 따사한 볕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봄이 좋은 이유이다. 이제 가마 메는 일만 남았다고 미가엘 복지관 직원들이 하나 둘 웃통을 벗어젖히고 있다. 지난했던 시대를 짊어지고 왔던 늙다리 어르신들에게 바지런히 점심대접을 하고 있다. 약용 선생의 인지좌여락 불식견여고(人知坐輿樂 不識肩輿苦사람들은 가마 타는 즐거움을 알아도 가마 메는 고통을 모른다)를 힐끔 훑고는 잰걸음으로 총총 움직이고 있다. 이 번 봄은 복지관 막내 슬기가 함지박 미소를 품고 녹차 한 잔 갖다 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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