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칼럼

문화와 비문화의 경계에서

濟 雲 堂 2010. 3. 16. 15:44

 

새 천년 벽두부터 불기 시작한 이른바 <문화>라는 화두는 한반도 전역을 후끈하게 달아오르기에 충분했다. 이미 십 년이 지나 구어가 됐지만, 당시 우리의 상황으로 봐서는 구태적 삶의 환경을 개선하고 새 시대를 고대했던 국민적 여망이 높았던 관계로 새로운 세기의 중심부에 놓이게 된 거였다.

 

 거리마다 개명된 ‘문화’관련 입간판들이 세워지고 정부의 자금이 뒤를 대주는 공공 공사에는 ‘문화’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서는 진행이 안 될 정도였으니, 가히 그 위세는 문화 곧 세상을 바꾸는 아이콘으로 통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셈이었다. 실제로 신포 문화의 거리, 부평 문화의 거리, 월미 문화의 거리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름들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 주기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급박하게 변태되어가는 쓰나미성 일상들을 반추해보면 이러한 변화의 배후에는 싫든 좋든 <문화>구호가 여전히 똬리를 틀어 배수진을 치고 있다는 게 감지된다. 그러나 문득 문화라는 단어를 한자말로 늘어놓고 보니 <化>라는 문자가 동공에 박힌 모래알처럼 이만저만 껄끄럽게 느껴지는 게 아니다.

 

 파자를 하면 사람의 몸뚱어리가 칼 또는 비수를 취한 형상인데, 수동태이건 능동태이건 간에 그림으로 대치시켜 놓고 보면 여간 섬뜩한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뭔가를 이루거나 의도적인 조합됨의 정체성을 표기할 때 쓰이는 <化>의 본성에는 강제성 내지는 폭력적 구조가 내재돼 있다는 것이 눈에 거슬리고 있어서이다. 일제 강점 이후에 본격적으로 우리 일상에 사용되는 역사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굴욕적인 느낌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로 숨어 있다. 폐일언하고 획일적인 것을 배제하고 다양한 관습과 개개의 속성들이 존중받는 요즘 풍토에 딱히 바꿔 쓸 단어도 없으면서 귀한 지면을 빌어 딴죽거리는 알량한 속내가 부디 용서가 되길 바랄 뿐이다. 여하간 뉴 밀레니엄이란 호리병에 담겨진 것은 에너지 넘치는 문화의 입자들인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고 그 물을 마셔야 문화인으로 살 수 있다는 요지가 설명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8일자 사설 <배다리 문화거리, 쓰레기장 돼서야>를 읽고 불현듯 스쳐가는 이미지를 정리해 놓고 보니, 글 판 전체가 아수라장처럼 난잡스럽기 짝이 없게 돼버렸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함민복의 시집 제하처럼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 아니어도 ‘배다리 문화거리’와 ‘쓰레기장’이라는 두 문구를 놓고, 현재 재개발에 따른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배다리 일대의 상황을 관망컨대 뭔가가 누락된 헛헛증이 가슴에 걸리고 말았다.

 

 우선은 지하화로 결정된 배다리 산업도로의 현재적 방치상황이 그랬고, 둘째는 불가항력적 폭설로 인한 제설작업의 투기처가 파헤쳐진 도로면이었다는 것. 그리고 셋째가 그 투기장 위에 다시 생활 쓰레기가 부지불식 모여 산더미를 이루었다는 점이 이유였다. 그러나 혼돈상황을 이끌어낸 결정적 원인을 동구청과 도시개발공사의 무책임한 떠넘김 혹은 방임과 주민들의 불법투기 행위로만 여기지 않는다. 문제는 조직적인 사회구조에 있어서 <틈>에 대한 사고와 행위방식이고, 튼실하지 못한 문화화 과정을 통과하는 <경계>에 대한 사회 철학적 인식의 부재가 더 큰 무게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 땅의 모든 경계에 꽃을 피우고 싶어 하는 마음은 평화를 간절히 기리는 데에서 출발한다. 특히나 합리적인 협의와 양보를 이끌어낸 배다리의 현재적 상징성을 놓고 봤을 때 좀 아쉽다는 만감이 흐르고 있다. 이번 꽃샘추위가 어느 정도 누그러지면 따사한 빛을 머금은 봄이 우리 가슴팍에 와락 안겨들 것만 같다. 지루하게 움츠려 있던 햇볕도 자체발광의 기운을 느슨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어두운 세월이 밀려가고 있다. 썰물처럼 봄의 덩지가 불어나 배다리의 잔설을 밀어내는 봄날이 기어코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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