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쓰다고, 밥 알이 돌덩이 같다고
고모는 세상과 단절되어 가는 순간들을
전화로 일러주신다
"이빨도 남의 이빨이여
무르팍 뼈 마디 안 쑤신디가 읎서
지팽이 읎신 돌아댕기기도 힘들구마!"
밭에서 갓 나왔는지
똥 냄새 나풀거리는 무 한 묶음을 받아 들었다
연수동, 문학산 산자락이 도시와 만나는 경계
미처 개발이 안 된 텃밭에서 키운 것이라며
스테파니아 형수는 이-마트 노랑 비닐 봉투에
무를 담뿍담뿍 담아주었다
갑옷처럼 황토를 두르던 무는
급살로 쏟아붓는 수돗물에 쉽게 닦여졌다
원죄의 사슬도 황톳물처럼 흘러가버렸으면 좋았을
무 한 소쿠리가 벌거벗은 채 창백해 있다
가락국수 면 발 같은 속 살
어찌보면 갈기갈기 분해된 육신이건만
채를 통과하는 족족 끝끝내 투명한
아, 무여
젊은 날 애인이여
소금 같은 사랑의 말에
뻣뻣한 가슴 풀어헤쳐 안기고 마는
번개 같은 추억이 불현듯 인다
살아 있어도 죽은 체 하고
죽었어도 영원히 기억되는 불가지적 세상에서
단절이 곧 삶이고,
죽어야 산다는 것을
고모가 일러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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