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진개 떡방

무 시루떡

濟 雲 堂 2009. 11. 24. 23:54

입이 쓰다고, 밥 알이 돌덩이 같다고

고모는 세상과 단절되어 가는 순간들을

전화로 일러주신다

 

"이빨도 남의 이빨이여

무르팍 뼈 마디 안 쑤신디가 읎서

지팽이 읎신 돌아댕기기도 힘들구마!"

 

밭에서 갓 나왔는지

똥 냄새 나풀거리는 무 한 묶음을 받아 들었다

연수동, 문학산 산자락이 도시와 만나는 경계

미처 개발이 안 된 텃밭에서 키운 것이라며

스테파니아 형수는 이-마트 노랑 비닐 봉투에

무를 담뿍담뿍 담아주었다

 

갑옷처럼 황토를 두르던 무는

급살로 쏟아붓는 수돗물에 쉽게 닦여졌다

원죄의 사슬도 황톳물처럼 흘러가버렸으면 좋았을

무 한 소쿠리가 벌거벗은 채 창백해 있다

가락국수 면 발 같은 속 살

어찌보면 갈기갈기 분해된 육신이건만

채를 통과하는 족족 끝끝내 투명한

아, 무여

 

젊은 날 애인이여

소금 같은 사랑의 말에

뻣뻣한 가슴 풀어헤쳐 안기고 마는

번개 같은 추억이 불현듯 인다

살아 있어도 죽은 체 하고

죽었어도 영원히 기억되는 불가지적 세상에서

단절이 곧 삶이고,

죽어야 산다는 것을

고모가 일러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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