舌 .썰. 說

초록 유전자

濟 雲 堂 2009. 3. 13. 00:09

 

41797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왼 쪽 속주머니에 품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 진다고

익명의 그가 말했다

 

대뜸, 나이도 걸싸하니 먹었고

제법 풍모도 빈한이라는 이미지와 사뭇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익명의 그가 왜 그런 말을 읊조리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 원 짜리 한 장이라는 수리적 제한수를 동원해야 했던 이유와

왼 쪽이라는 특정 부위를 거론한 걸 보면

뭔가 의미가 있어 보이기도 할 거라는 막연함이

나른한 오후의 심드렁함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를 익명으로 표현한 데에는

별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와의 처지를 달리해 내 경험 속에도

아삼아삼한 추억이 스무살 무렵에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 250원

솔 담배 250원

학교 식당 라면 100원

거기에 밥 추가하면 100원 더

소주 한 병에 150원

전철비...가 얼마였더라?

정기권 패스를 구입했었으므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한 달에 사천 여원이었고

극장 입장료 500원

전철이 끊기면 여인숙 비 3000원

 

만 원은 큰 돈이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그가 지닌 만 원 짜리 한 장으로는

영화 한 편 외롭게 봐야할 정도 밖에 구매력이 없는데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집착하는 이유는 과연 무었일까

 

 

초록이었다

그가 심장에 품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초록의 발광체였고

그가 쫓고자 했던 도시 밖 세상의 유사 대용품으로써의

안위였던 것이다

 

봄이 다가오고 있음이 감지되는 어느 순간부터

동공의 조리개가 증폭되면서

더불어 빛의 세기가 증가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키가 갑자기 작아져버린 빌딩들 너머에

마천루 같은 아파트 뭉치들

옷이라고는 한 벌 뿐일 것 같은 검은 아스팔트

지난 겨울의 혹독한 바람에

홀라당 벗어 제껴버린 알 몸 나무들

마를 대로 말라버려 퍼석거리는 쥐똥나무 가로수 등이

초췌해 보일 무렵

 

그는 초록이 되고 싶은 거였다

그를 유혹한 건

만원의 행복이라는 허당 프로그램의 주제가 아니라

돈의 바탕 화면으로 깔려져 있는

초록 빛깔에 대한 동질인자를

소유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래서 만원이었던 거다

 

초록 빛에 묻혀

산 속 깊숙이 사는 사람을 일러 선仙(人+山)

초록을 쫓아

난중계곡도 좋아라 외 줄 타듯

허걱대는 사람을 일러 속俗(人+谷)이라 했던가

불과 한 뼘 짜리 거리에도

그리움을 불살라야 하는 우리들 외로움에는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동질시키려하는 비루함이

분명 내재돼 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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