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동 시장이 닭전 골목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1960~70년대
그렇지만 이 보다 더 훨씬 이전인 1900년부터
신포동 시장은 이미 어물전과 닭전이 번성하고
급기야 1927년에 비로소 상설 시장으로서 면모를 보이게 된다
역사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내 오랜 기억의 장면 속에 사진의 주인공인
욕쟁이 할멈을 떠올리기 위해서다
그녀는 닭집 주인이었다
판자로 얼키설키 지은 작은 단칸 가게에
닭장을 차려놓고 즉석에서 잡아서 잘라주는
요즘 말하면 생닭을 파는 가게의 주인이었다
연탄 불을 지핀 커다란 깡통에는 물이 데워져 있었다
닭을 잡을 땐 즉석에서 효수 시키는 게 아니었다
닭의 모가지를 뒤로 젖혀서 길다란 나이프^^로 가슴살 쪽을 향해 깊이 밀어
넣었다 빼면 닭은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이 때, 한 손에 모아진 채로 젖혀져 있는 날개를 살짝 놓아도 닭은
미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이 가관이었다
깡통에 절반 쯤 담겨져 있는 데운 물에 닭을 넣자마자
비명에 날개짓에, 흔들리는 깡통의 요란한 소리는
시장 골목이 떠나가라 꿈쩍대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소리가 멈추면
그녀는 능란한 솜씨로 털을 뽑고는
부위별로 또는 통째로 손님에게 내주었다
그런 그녀의 이력은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부친을 따라
어린 시절을 중국에서 보냈다고 했다
22년 생이니까 올해로 여든이 훨씬 넘은 나이지만
아직도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을 보면
실제로 그랬다는 것이 거지 반은 믿게 된다
지금은 중국인 러시아인을 비롯해 각국 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시장이지만 불과 십년 전
중국과 수교를 겨우 텄을 무렵에 그녀는
시키지도 않은 통역사 노릇을 자처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뻔 했다
...
오늘 그녀가 돌아갔다
어디로 갔는지 사람들마다 하마평이 무성했다
지난 밤까지 잠이 안 온다며 밤새 돌아다녔고
그저께는 생전 다니지 않던 목욕도 했던 모양이었다
목간탕에서 때를 밀어 드린다고한 채소집 할매의 호의에
몸을 맡겼지만 뼈만 남아 앙상한 육신을 차마 밀지 못했다는 말도
오늘 그녀가 실려간 응급차의 꽁무니를 보고
들었던 뒷담들이었다
왼 손이 알게 봉사한 그녀
당신 처지 보다 못한 노인들을 위해
음식을 달라고 손내밀던
좋은 말로 할 때 들어주지 않는 가게 주인들에게
찐득거리는 타액을 선사했던 그녀
오늘 아침 그녀가 돌아갔음에
슬퍼하거나 애닳아 하는 사람 하나 볼 수 없는 속정이
그래도 뒤돌아 보니
아쉽다
...
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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