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쓴 仁川(남의 살)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 -김광균-

濟 雲 堂 2007. 6. 13. 02:08

 - 곡(哭) 배인철 군

 

주안묘지 산비탈에도 밤벌레가 우느냐

너는 죽어서 그곳에 육신이 슬고

나는 살아서 달을 치어다보고 있다

가뭄에 들끓는 서울 거리에

정다운 벗들이 떠드는 술자리에

애달프다

네 의자가 하나 비어 있고나

 

 

월미도 차가운 선술집이나

미국 가면 하숙한다던 뉴욕 할렘에 가면

너를 만날까

이따라도 '김 형 있소' 하고

손창문 마구 열고 들어서지 않을까

 

 

네가 놀러와 자던 계동 집 처마 끝에

여름 달이 자위를 넘고

밤바람이 찬 툇마루에서

나 혼자

부질없는 생각에 담배를 피우고 있다

 

 

번역한다던

리차드 라잇과 원고지 옆에 끼고

더런대는 걸음으로 어델 갔느냐

 

 

철쭉꽃 피면

강화섬 가자던 약속도 잊어버리고

좋아하던 쫀슨 뿌라운 테일러와

맥주를 마시며

저 세상에서도 흑인 시를 쓰고 있느냐

 

 

해방  후

수 없는 청년이 죽어간 인천 땅 진흙밭에서

너를 묻고 온 지 스무날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부질없고나

 

 

 

                                <신천지 1947년 10 -전문->

 

 

시인 김광균의 절절한 애닳음으로 써 내려간 배인철 시인의 죽음은

시인의 집 툇마루에서 연기로 사라져가는 담배 만큼

허무의 극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해방 후 사상적 대립이 극심했던 당대의 분위기에서

수 없이 많은 청년들이 38선을 넘나들었고

해방 공간 도가니에서

자유를 곰삭히려고 때로는 사회주의의 꿈을 쫓아

이 시대를  이 민족을 이 나라를 구하려

얼마나 많은 애를 쓸어내렸던가

이데올로기의 허상은 현실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지난 세기는 반성문을 제출한 상태가 아녔는가

 

"수없는 청년이 죽어간 인천 땅 진흙밭에"라는 구절이

의미심장하다

모 청년단원들에 의해 또는 동맹이니 연맹이니 하는 사상의 노예들에

무참히 스러져간 어느 "여름 달" 혹은'꽃'...

부질없어서 진정 시를 쓰는 일이  쓸데 없어서

시인 김광균은 한 때 절필했던 것일까?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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