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목(都市遊牧)

폐가산책(廢家散策)

濟 雲 堂 2007. 4. 2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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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들이 익숙해진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타이머가 장착돼 있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를 수록

공간적 이동이 많아 질 수록에

떠난다는 것이, 때로는 미완의 표지석처럼

아쉬운 기억을 담고 있는 순간들이 많아진다.

 

구도심이란 별명을 달고 사는 동네 몇 곳을 찾아보았다

사람의 온기 마저 찾을 수 없는, 폐가로 변해버린 집들의 대문에

사람이 살았었다는 기억을 알려주듯

몇 개의 표식이 눈에 띄었다

 

스티커 한 장 툭하니 붙이고

몇 마디 냉한 사무적 말투를 던지고 사라져버리는

요즘과 달리

당신네 집에 설치된 똥두간의 용량을 이렇소

가옥의 고유 번호는 이렇고

전기는 이렇고 당신네들이 사용하는 수도꼭지의 고유번호는

이러이러 하오, 하고는

대문이 흔들릴 정도로 인식표를 박아대는

조사원들의 손길이 가슴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불현듯 스쳐지나가는 유년의 기억들

똥지게를 짊어진 청소부 아저씨가 뒤뚱뒤뚱 거리며

똥차에 실어 올리면 길다란 장대에 깡통을 끼워 만든

똥퍼 아저씨가 잽싸게 달려오라고 재촉하는 모습

역시 고금을 막론하고 무겁고 어려운 일은 신참들의 몫이란 걸 느끼게 되고

가격을 흥정하는 어머니나 훈수두듯 가격 좀 절충해 보자며 점잖빼는 아버지나

코빼기를 틀어 쥐고 입으로만 숨을 쉬는 나와 동네 친구들은

간간히 땅바닥에 흘린 똥물을 뛰어넘으며 놀았을 옛 집의 추억

 

사라지고 보니 웃음의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들과

사라져 버려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냉험한 기억들의 중간계에서

아련함과 분노는 동기간이고

무심함과 희망 사이는 고부간이라는 말이 새삼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폐가도 추억을 낚아올리는

낚시밥으로 전락되고 있음이 아쉬운 순간이다.

가마 타는 자가 가마 맨 자의 고통을 어찌 알겠냐마는

지나온 삶의 흔적을 통해서 우리네 삶의 자양을 찾는다면

이도 좋은 추억이 아니겠는가

비록 미완으로 남은 표지석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