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미당과 운보의 삶 그리고 그후

濟 雲 堂 2001. 5. 4. 00:00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가슴과 머리에 오래도록 保持 한다는 것은
싫든 좋든 간에 그 인물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피치 못할 인연이 있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또 다른 사람은 한 해를 시작하는 벽두에서 이승적 삶의 끈을 저승으로 옮겨 놓았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미당' 서정주와 '운보' 김기창이 바로 그 소식의 주인공들입
니다.
한 사람은 서정성을 기초해서 사투리의 고급화를 구가했다고 평가를 받으며
반세기에 걸쳐 국내 시 창작의 거두로 살아왔고
다른 한 사람은 '이당'김은호의 제자로서 기존의 정갈하고
세밀한 산수화 계열의 그림들을 독특하게 불려지는 '바보 산수화'를 그려냄으로써
종교계를 비롯하여 한국 화단의 거봉으로 살아오셨습니다.
언론을 중심으로 학계, 정계, 종교계는 일제히 두분의 죽음을 대서특필하였고
저 마다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한 마디씩의 덕담을 늘어놓으며
돌아간 분들을 기리고 대중들에게 공통의 비가를 불러줄 것을 암약으로 호소하는 읍소들이 다발적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죽음을 귀하게 여기고 살아온 행적과 사회의 기여도에 따라
그 분들의 넋이 추앙을 받는 것은 당연한 처사라고 보여지나
어딘가 모르게 뒤가 캥겨오는 떨떠름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두 분이 거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행적 또한 비범의 범주에서 이미 특화된 예술인으로서
일제 강점기에 친일 행각을 벌인 사람들이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지만
한국 사회는 너그럽게도 쉽게 잊어 주는 관용을 두 분에게도 적용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앙금으로 남기만 합니다.
일각에서는 "뭐 그런 걸 이제 끄집어내서 뭘 하느냐"고 하고 어느 일각에서는 "일제의 앞잡이로 또는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을 왜 그리 성대하게 다루느냐"고 말들이 아직도 구구하게 전해집니다.
예술지상주의를 지향하는 입장과 민족주의적 입장이 서로 다르다시피 여러 회원님들도 다를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보지만

몇 가지 의문되는 것은

과거에 벌어진 일들은 과연 무시되어도 좋은 것인가?

죽음 앞에 성역은 따로이 존재되어야 하는가?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남겨 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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