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어떤 사내

濟 雲 堂 2001. 5. 3. 19:09
어느 한 사내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내는 네게, 일언반구를 떠올릴
만한 추억도 따끈한 술 한 잔 나눔도 없었는데도 그 사내는 내게, 살아가는 데에 마음을
뜨겁게 지니게 하는 법을 알려주고 고독하고 외롭게 그리고 철저히 존재의 시원이 무엇
인지를 애써 나눠주려고 했다. 그 사내는 내게, 하루하루 한마디씩의 화두를 건네주지만
그의 말은 지상의 언어가 아닐 때가 더 많았다. 가령, "사랑해 보세요! 사랑하세요! 사랑
해야 해! 사랑 받을 자격이 있어요! 사랑은 절대적이에요! 사랑은 헌 신짝처럼 내팽개치
세요! 사랑은 불입니다! 내 사랑은 무조건입니다! 내 사랑은 분열을 주려고 하는 겁니다!
내 사랑은 죽음 입니다! 내 사랑은 인내임과 동시에 저주입니다! 내 사랑은 온유한 분노
입니다! 내 사랑은 하나이지만 동시 다발적입니다!" 등등... 이라고 말할 때. 나는 혼돈과
미명 속에서 헤맬 때가 더 많았었다. 그런 그가 죽음을 맞았을 때, 세상은 양분되었고 이
분화된 사랑의 구조는 더욱 분명하게 받아들여졌다. 그의 죽음이 밀레니엄의 제곱이 되
도록 흐른 지금도 그가 말하는 사랑에 대하여 이견과 의견은 분분하고 더욱 다변적인 해
석을 위한 접근이 시도되고 있지만, 어쨌거나 그는 아직도 역사의 거대한 배경으로 진화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런 그가 일부 교조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매 년 마다
생일상 받는 날을 지정 받았고 오늘이 또한 그 날이라는 것을 세상에 기려지게 되었다.
참으로 기구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의 본질에 있어서 얼마나 허점들이 많았으면,매 년
이 날만 되면 가슴팍이 허해지는 감을 도무지 감출 수가 없게 만든다. 난세일 수록에 숨
겨진 인물이 그 빛을 발한다고 한다.우리가 현재를 살아가고 앞으로도 살아갈 동안은 늘
난세의 그늘에서 벗어 날 수는 없겠지만, 오늘은 그 사내의 태어남을 공식적으로 축하해
주는 행사가 전지구적으로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은 늘 난세임을 조장하
려는 보이지 않는 세력은 늘 있게 마련, 그 가운데에도 역사의 거룩한 배경 속에서 일직
선으로 다가오는 그가 오늘따라 더욱 그려지는 것은 참으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어쨌
거나 그는 공중에 떠도는 사랑을 지상으로 끌어내린 인류의 몇 안 돼는 진실한 '꾼'으로
기억되어야만 한다. 사랑의 실천가로서 목숨을 초개처럼 내 던질 줄 아는 양심가로서 우
리는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은 분명한 일이다. 지금 눈이 내린다. 발목이 미끄러지고 세
상이 비틀거리고 있다. 질주와 폭주와 광란의 시간대가 주춤거리고 있다. 마음 속 어딘
가에 시려오는, 보이지 않는 '너'를 사랑하고 싶어진다. 그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것이
라는 그의 말이 하얗게 빛나는 밤이다.


'밤의 대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새는 그리움으로 날개를 접는다. (새해 인사)  (0) 2001.05.03
體用論 (물에 관하여)  (0) 2001.05.03
겨울 강가에서  (0) 2001.05.03
세기말 희망의 근거 1  (0) 2001.05.03
신포동 사람  (0) 2000.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