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소멸, 그 존재의 미학을 찾아서

濟 雲 堂 2000. 9. 8. 16:04

태어나 자라고 보니 우리네 삶의 키는 제한 된 우주의 높이 만큼 서 있고
제한 된 키만큼만 성숙하는 육신의 버팀목에
우리의 영혼은 걸려 있는 과실처럼 간당간당 매달려 있습니다.
과일의 향기는 코끝을 후비고 들어와 어딘가에 감춰져 있는
세상의 꿈을 온 몸으로 표현합니다.

솟대. 우주나무.
그 나무에 매달려 있는 새는
멈춰 있어도 늘 날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의 소멸도 유한의 기쁨도 혹은 슬픈 사연도
나무 한 그루로 서 있는 저 불령의, 공정한 썩음의 순환을 암시하는
우주의 나무
솟대는 창구입니다. 내가 가야 할, 그 곳에 대한 암시입니다.
썩음을 원치 않는 것은 소멸의 배후에 시간의 작은 틈바구니에서 미세하게
나를 삭혀내는 측정 불가능한 움직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 것이 미생물이든 호흡을 멈추게 하는 인자든 간에 나는, 불특정의 '나는'
나로부터 해체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주나무.
불멸의 근거. 끊임없이 나를 나의 연속으로 이어나가게 해 주는
오래된 믿음의 체계. 소도에서는 금치산자도, 어린 벗들도, 소외 받은 이웃들도
외로운 사람도, 힘 없고 약한 여인도 모두 저 세상의 이상을 꿈꿀 권리를 부여받습니다.

우리네 조상님들은 적어도 죽음에 대한 인식을 그렇게 갖고 살았습니다.
채워짐의 비움은 비움만큼이나 성숙해지고 다시 채워지는 이중구조를 가졌으나
그 이중구조가 결국 하나의 움직임으로써 삶이라는 자연적 질서를 형성해 나가게 됩니다.
죽기 싫어가 아니라. 죽어도 좋으리! 내 죽어 뭐가 되어가 아니라 우주로 돌아가
엄청난 그 역사의 대열에 합류하고 결국에는, 진정한 인간의 삶은 썩는 것이 아니라 팽창과 흡수의 움직임. 그 힘을 체득하고야 마는 것.
보이지 않는 신호를 늘 그냥 지나치면서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절망을 하고 사람사는 게 다 그렇지! 결국에는 어느 누구도 죽음의 그림자를 떼어놓을 수 없어! 우리가 죽기 전까지는 이라고 말해 버리고 맙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극단적인 사태는, 내가 죽으면 이 세상도 끝이야!
나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어! 내가 꼭 해야 해! 나 하나 죽는 다고 해서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아! 입니다.
과정입니다. 우리의 삶은, 단지 그렇게 흐를 뿐이고 그래야 한다는 거. 시험을 치루듯 늘 시험받고 준비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 과정이 끝나는 대로, 꼭 확인해야 하는 것은 결과에 대한 궁금증을 푸는 일일 뿐입니다. 그래서 과정 즉 삶의 과정적 방법들이 난무한 겁니다. 마치 시험을 준비하는 학원들이 많은 것처럼 이요.
종교, 사랑, 문학, 현실적인 삶을 이루는 총체적 문제들은 우리를 어디론가로 안내하고자 하는 과정적인 것들입니다. 지금은 그 과정적인 것들을 느끼고 깨우치는 것에 몰두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현실 속에서 그 미학을 찾는 일. 삶을 주체적으로 헤쳐 나아가 자의식으로 성장해 열매를 맺고자 하는 것에, 우리는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제각각의 나무 한 그루를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 그늘에 쉬어 가 한 계단 더 높이 오를 누군가를 위해...

추석입니다. 한가위처럼 나누고, 나의 설자리를 위해 자리를 내어 주신 돌아간 분들께. 현재적 삶을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해야 할 때입니다. 음덕의 기운이 동지 만큼이나 깊고 중후한 절기가 바로 한가윕니다. 다들, 한가지씩만 나눕시다. 글이든 전화든... 먹을 것이면 더욱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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