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의원을 뽑는 투표가 불과 몇 시간 전에 끝이 났다. 투표 결과에 대한 예측치인 이른바, 출구 조사가 함께 실시돼 발 빠르게 희비가 엇갈리는 분위기로 뉴스가 갈무리 되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될 거라는 예측과 승패가 갈리는 각각의 후보들을 영상에 담는 분주한 모습들이 각종 매체의 메인을 부지런히 장식하고 있었다.
무엇이 이렇게 한국 사회를 설레게 하고 정치적 열망의 호수로 초대하는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겠지만, 과거에 대한 현재적 가르침이라 할 수 있는 반면교사의 상황임에 틀림없었다. 아울러 영원한 것도 절대 불변한 것도 없는 보편적 인간의 수를 재확인하는 반성의 시간으로 시선을 돌리게 돼 일파만파 앞날을 예상하려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를 파자해 보면, 바를 정(正)에 헤아림을 의미하는 지(支)나, 문서를 의미하는 문(文)자가 합쳐져 다스릴 정(政)자를 이루고 있다. 치(治)는 흐르는 물을 의미하는 물(水)이 아니라 떨어지는 모양을 갖춘 물(氵)을 왼편에 놓고 양육을 뜻하는 태(台)와 함침으로서 관리 및 평정을 의미하는 치(治)가 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정치는 문서 또는 지침을 갖고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듯 자연스럽게 살핀다는 정의로 요약되고 있다. 물 흐르듯 아이를 돌보되 정의에 따라 옳음을 실천하는 게 정치라는 것을 한자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 동안, 그렇지 못했던 바에 반성의 기회를 주기도 하고, 잘 했으니 지속적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로 출마자에게 투표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기본권이자 꽃으로 비유되고 있다. 그럼에도 OECD기준으로 봤을 때, 우리의 상황은 매번 꼴찌를 면하기 어려운 투표율로 인해서 과연, 세계 정치의 선진적 대열에 부합하느냐는 의문이 던져지고 있는 시점이다. 단순수치비교 차원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는 자답을 내 놓게 된다.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다수 국민들의 불신과 복지국가 실현의 더딤 현상은 경제 악순환이라는 고리와 맞물린 총체적 위기의식이 팽배해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이면 도하 신문들은 선거관련 정보를 봇물 쏟아내듯 토해낼 것이다. 아울러 당선의 향방에 따라 정국의 재조정과 구태 신태를 들먹이며 미래정치에 대한 구획선을 내 놓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즈음 금강석 같이 변치 않는 이념이라 할 순수정치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