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毒)을 생각하면 섬뜩해진다. 사극에 출연한 배우들이 사약을 마시고 턱턱 쓰러져 세상과 단절되는 장면들이 비장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배는 외부와의 완벽한 고립을 상징하는 최고의 형벌로 간주돼 있다. 이와 비슷한 류가 암(癌)이다. 생명체가 유지할 수 없도록 조직과 조직 사이에 벽을 만들어 상호소통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물리적 생명성에만 국한돼 단절과 불통의 이미지로서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이라 지탄받는 이성적 활동에도 적용되고 있다.
한국 사회가 나아졌다고 하는 데에는, 과거 일방통행으로 치닫던 정치구조에서 합의점을 마련해 가는 시민정치시대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무력과 강제, 절대 권력과 이데올로기로 구축했던 지난 세기의 구습을 해체하고, 다양한 열린 사고와 시민의 적극적 정치참여는 현대사회를 만들어낸 큰 축이 되었다. 이른바 민주시민사회가 그것이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 출발해 우리에게 이식된 민주주의, 그리고 제 3세계 유수 국가들이 이상적으로 그리는 배는 여전히 피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는 역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여전히 익명의 희생은 노가 되고 누군가의 헌신은 돛이 되지만, 방향타는 늘 기득권자들의 몫으로 변질된다는 점에서다. 요는, 권력의 배분과 효율적 운용이 비정상적으로 소수에게 몰려 있다는 것이다.
인천 지역사회를 펼쳐보면, 독이 되고 암이 되는 반사회적 증후들이 곳곳을 피멍 들이는 게 감지되고 있다. 게다가 반인륜적이라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첨예해 보인다. 사람을 모시는 철학은 없고 교활하리만치 조직사회의 약점을 역이용해 권력을 악용하고 있는 모습들이 대표적인 현상이 되었다. 일 년 전부터 지역사회의 문제 유발자로 부각되어온 몇몇 자치 단체장들이 그 모습이다. 이들을 천거한 당과 당의 중추들의 자질과 역량이 의심스럽고, 시민정치의 대리자로서 정정당당한지 의구심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목적은 단순 명료하고 일천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자성어를 들먹일 필요 없이 세상에 이름 올리는 일과 돈 버는데 혈안이 되는 일, 아울러 더 높은 권력을 쫓고 이를 위해 권력의 지남철에 들러붙어 기생하는 권력 지향적 시민들과 교묘히 공생하는 일이었다. 공공연하게 차명을 이용해 땅 투기를 하는 것은 예사가 되었다. 자신의 뜻에 반하는 직원, 이른바 ‘꼴통 정부미’들을 이간해 언로를 차단하거나 한직으로 밀어 넣는 것도 기본이었다. 시민에 대한 봉사를 천직으로 삼는 직원들의 정당한 ‘공무원 노조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 아니, 사무실 문을 용접하는 것도 모자라 쇠사슬로 채워버리는 작태는 무지의 극이었다.
무엇이 인천 사회를 낙뢰 맞은 대추나무처럼 뼈 조각인 채 달빛을 고대하는 스산한 모습으로 만들었는지 심각히 고민해야 할 때다. 시민 정치의 대리자로 선출된 사람은 그 목적이 시민을 감동케 하는 사회로 향해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막상 뽑아 놓고 보니, 용적과 함량 미달의 사태가 속출했다. 민도가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경제 악순환에 허덕이는 고로, 먹고 살 길이 우선순위가 되어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의지마저 ‘귀차니즘’에 빠져버린 상태가 되었다. 자연히 쉽고 편한 길, 남이 싫어하고 쓴(정의) 소리만 내지 않으면 장래가 순항되는 구조에 들러붙어버리고 만 것이다. 지경이 이렇다 보니, 독을 독으로 보지 못하고 암을 암으로 보지 못하는 무력한 시민의 양산으로, 미래가 칠흑처럼 어둡고 험난하게만 보이고 있다.
포용력을 잃은 사회는 병든 사회다. 들을 귀를 갖추지 못한 위정자를 뽑아 놓고 배신당했다는 말이 설레발치는 사회는 불신과 보복으로 점철된 사회로 볼 수 있다. 다수의 찬성표가 과연 정당한 방법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소수에겐 독이 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싸구려 위정자의 터럭 날리는 움직임 하나에 도시 전체가 움찔거리는 비상식적인 상황에서는 수평적 사회를 꿈꾼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정조가 베푼 연회에 참가한 후 ‘부용정시연기(芙蓉亭侍宴記)’를 남긴 다산 정약용이 정조의 절제된 삶과 경제적 관심,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신하를 대하는 태도 그리고 검약함에 감동해 시연기를 남겼다는 것에서 수직정치의 또 다른 대안을 찾아보게 된다. 아울러 정조가 신하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슬기롭게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도 오늘날 해결방안으로 삼아볼 일이다.
광복 70주년. 누군가로부터 건네받은 빛의 시간이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빚으로 남아 있는 떨떠름함이 쉽사리 해갈되지 않았다. 외세에 혼쭐나고 일제 강점기를 통해 경각에 빠졌던 경험들이 오롯이 전수되지 못한 가운데, 2015년 또 다시 8월 15일을 맞이한다. 애국 애민했던 선구자들의 뜻을 올곧게 이어받아야함은 물론, 어깨에 힘을 빼는 일부터 위정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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