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자료

재미있는 인천의 문화재 기행

濟 雲 堂 2013. 5. 19. 14:19

하나도 『... 없... 』

-인천관광공사 『재미는 인천의 문화재 기행』-

  요즘 들어 주변사람들한테서 “당신, 참 재미없는 사람이야” 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종종 들을 때마다 종종 기분이 나빠진다. 이름 석자 가운데 ‘종’자가 붙어서인지 몰라도 내 이름을 불러준다거나 불현듯 남에게 소개할 기회가 생기면, 요상하게도 ‘종’은 ‘종종’이란 말로 연상되어 결국 호명된 내 이름의 끝자락엔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정의 내리는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우스개로 꾸며 살기 어려웠던 서민들의 배꼽을 꽤나 움켜쥐게 했던, 왕년의 명 만담가 ‘장소팔, 고춘자’가 아닐 바에야 세치 혀에서 털어내는 제한된 이바구를 갖고 사람들을 재미나게 만들어 주기에는 애시 당초부터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는 이 시점에서, 강의 의뢰는 왜 그리 많은지 의문스럽다는 익명의 ‘주변사람들’, 그 시선이 여전히 따갑게 느껴지는 참이었는데 말이지.

 

익명을 빙자해서 ‘주변사람들’이라고 도매금 처리한 사람들이 나를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몰아붙인 데에는 내 이야기의 전반이 인천으로 시작해서 인천으로 끝낸다는 것에 있다. 인천에서 젖을 물었고 인천이란 밥을 먹고 살아가는 만큼, 이 땅에 묻히기 전까지 ‘개그맨’처럼 줄기차게 인천이란 노랫가락을 읊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첫 꼭지에 언급했듯이 나라는 인간이 점점 ‘재미’랑은 멀어져 가고 있으니 말이다. 보통 문제가 아닌 셈이다. 개항도시 인천을 이야기(야그)해 주는 사람 즉 ‘개그맨’의 정체성과 신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런 지경에 인천문화재단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는다. 더 정확하게는 비평적 에세이 형식을 빌린 ‘재미’난 글을 써 달라는 주문이다. 아이구야~! 건네받은 책은 <재미있는 인천의 문화재 기행>. 가뜩이나 ‘당신 재미없다’고 낙인찍힌 사람에게 쥐어진 책치고는 형벌에 가까운 제목이었다. 십오 년 넘게 인천 바닥을 핥고 다녀서 미각조차 남아 있을지 의문스러운데다가 책은 또 왜 그리도 두껍고 무거운지 도무지 첫 갈피조차 넘길 자신감이 서지 않았지만 내심 이 책이 진짜로 재미있으면 어떻게 하나... 라는 싸가지 없는 생각이 책을 펼치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책 제목이 주는 충격파는 일주일이 넘도록 책표지를 만지작거리게만 했다. 독자들은 이 기분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서평을 써준답시고 받아 든 책을 일주일 넘게 면벽에 세워두고 잘 써지기를 바라는 ‘나이롱’ 글쟁이의 마음을 말이다.

 

인천의 산을 알고 싶어서 경기도 땅과 인천 땅 끝자락 경계인 소래산 꼭대기를 시작으로 계양산까지 인천의 주봉을 밤새도록 넘어 다녔었다. 길마산에서 노적산에 이르는 산길은 또 어떠했고. 고려산, 진강산, 마리산 밤샘 길도. 인천광역시 주소를 꼬리에 달고 다니는 옹진군 일대의 섬들과 청라도에서 논현, 호구포대에 이르는 광대한 해안선을 부지기수로 걸어 다녔던 필자가 아녔는가. 더군다나 근대 개항장 일대는 필자를 키워준 친어머니의 품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독자들에게 착시현상을 주려고 과거의 이력을 잘난 척 나열한 게 절대 아니다. 인천 토박이, 인천 진골이라는 꼴같잖은 껍데기를 벗어 내던져야 인천 시민 모두가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게 필자가 진작부터 먹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실마리는 이렇다. 이제야 인천에서 사는 맛을 느끼게 되었고, 인천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겨우 철이 들어가고 있다는 거였다.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기 전에는 계절 감각을 모르는, 말 그대로 철부지에 시시콜콜 귀동냥한 건 있어가지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책없이 나발 불어댔다는 얘기다. 이 게 어디 보통내기인가 매너리즘과 착각에 빠진 완전한 날라리지. 하여튼 동파 소식의 <여산 진면목>이란 시를 빗대서 말하면 ‘알면 알수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여산처럼, 인천이란 곳이 바로 필자가 빠져든 혼돈의 늪이었다고 감히 독자들께 고백해 보련다.

 

필자가 펼쳐든 책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하나도 재미없는 인천의 문화재 기행’이었다. 재미없는 ‘인천의 문화재’라는 틀에다 ‘재미있는’이란 수식어를 끼워 넣어 만든 제목으로써 필진의 수고 의지를 보상적 차원에서 표현했으리란 것까지는 애교로 봐주겠는데, 적어도 필자의 입장으로 봐서 수용하기엔 괴로운 제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용적 측면에서 2003년 인천광역시에서 발행한 <인천의 문화재>와 역시 인천광역시에서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굿모닝 인천> <그래 어디든 가보는 거야>의 조합 편임을 한 눈에 알아봤을 때 ‘재미’라는 말이 창의적으로 들리기보다는 ‘울며 겨자 먹는’ 구태로 느껴지기도 했었다.

 

이 책을 만든 필진의 노고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하는 마음은 분명히 밝히련다. 다만, 그렇지 않은 데 그렇다고 말하는 의도가 부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소동파가 ‘여산 진면목’을 노래할 때, 여산의 진면목은 그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게 여산의 진면목임 밝혔던 것처럼 그냥 <인천의 문화재 기행>이라고 했으면 오히려 책의 무게가 가뿐해지지나 않았을까 싶은 게다. 책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판단 몫이 아니겠는가.

 

인천을 알리고 인천 정체성의 근간인 문화재와 그 관련 책들을 출판해 본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서로를 마음 깊이 공유하는 차원에서라도 따뜻하게 봐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항변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상대방의 얼굴에 묻어난 티끌이 더 크게 보이는 법. 그렇기에 조심스럽게 우정과 따뜻한 비판적 대안을 동시에 내 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먼 길을 가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기왕에 마련된 서평의 돗자리인 만큼 신발 끈 풀어 놓고, 화롯불 가까이 앉아 밤이든 고구마든 고이고이 잘 익어가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의 본때 뵈기를 펼쳐보았다.

 

이 책은 현재 출판된 인천관광 안내서적들 가운데서 비교적 명료하면서도 읽혀지기 쉽게 취합한 노력이 숨어 있었다. 단순화 시킨 입체그림지도를 포함해 안내자의 거친 숨결마저 들릴 정도로 써내려간 필체는 여타의 안내서가 지닌 단점을 충분히 보완하고도 남는 대목이었다. 이 책이 목적한 바에 따른 이야기 주도형 관광 형태를 직접적으로 적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히 살아있는 책이었다. 외국의 사례를 들어 기술하지만 이미 누구나가 느끼고 있던 관광의 문제점과 향후 관광의 형태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도 연구의 배경과 목적에서 충분히 제시하는 진솔함도 엿보였다.

 

예의 필자가 이 정도 평가하는 데에는 그 만한 가치가 책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구성 또한 나무랄 데 없이 평이하다는 점도 특기할 만했고 일정별, 지역별, 주제별 여행 행선지의 동선도 경험에 의거했으므로 대과없이 ‘안전빵’으로 만들어진 책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필자의 머릿속 한 구석을 쓸어내리는 찬바람이 여전히 가시지 않는 채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사진의 문제였다. 특히 개항장 일대의 건축물과 그 배경 사진이었다. 얼마나 쫓기는 마음으로 박아댔는지 시간대와 계절적 고려를 무시한 채 황량하게 만들어 놓은 일은 일대의 사고에 견줄 수 있는 문제였다.

 

지역별 관광 자원 부분 가운데 개항장 주변(47쪽부터)의 사진과 우리나라 최초를 찾아서(141쪽부터) 그리고 인천광역시 주제별 주요문화재 100선(174, 176, 177, 180, 181, 182, 183, 184, 185, 186, 187쪽)에 올린 개항장 일대를 상징하는 근대 건축물들은, 죄다 엉성하게 박아댄 사진이었다고 몰아붙인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침체와 암울한 이미지를 개항장의 얼굴이라고 내 놓은 것과 인천 도시 관광에 새 빛을 비추고자 한다는 이 책의 목적과는 너무나도 상반된 장면들이기 때문이었다. 도시의 풍모를 느끼게 하는 것은 도시 건축물이다. 사람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다. 얼굴은, 얼과 꼴이 합체된 말이다. 즉 사람의 영혼이 겉으로 드러내어진 형태를 얼굴이라 이르는 것처럼 말이다. 톡 까놓고 말해서 이 책에 게재된 개항장 일대의 사진은 현재의 처지를 극한적으로 보여주었다. 마치 불의(不意)한 주검을 앞에 두고 부랴부랴 급히 만들어 놓은 영정 사진처럼 말이다. 특히 라고 말하는 이면에 나머지 사진들도 나을 게 없다는 점을 집고 넘어간다. 비판만 하자고 덤벼드는 게 아닌 바. 책을 만드는데 왜 고충이 없겠는가 말이다. 물론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날로 옭죄는 사진 저작권을 피해가기 위해서, 쫓기는 원고 마감의 중압감, 현실감 넘치는 책을 만들기 위해 현장답사는 빠짐없이 해야 하는 등등 얼마나 많은 난관이 산재해 있다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래서 ‘여산 진면목’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니겠는가 말이지. 그래서 인천 진면목을 찾아내기 위한 진득한 탐구와 성실성이 이 책에도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을 꼭이 집어내야 했었다.

 

다시 세부적으로 들어가서는 기술적인 문제점들이 도출되는데 이도 또한 필자의 무딘 미각을 자극하는 요인이 되었다. 예를 들면 개념 정리에 관한 것인데 고인돌, 명승, 사적, 기념물 등에 대해서 요약된 풀이가 따랐어야했다는 것, 역사적 무게가 둔중하게 존재해 있음에도 누락된 곳이 많았다는 점 등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관문이라고(8쪽) 지칭했던 영종도 일대의 고대 유적 부분과 우리나라 최초를 기술했던(141쪽) 부분에서 외국인 묘지 등을 간략하게나마 기술하지 않고 빠뜨린 것은 적잖은 아쉬움이다. 이 또한 필진의 고충이 아닐 수 없는 부분이다. 자기 자신의 집구석에 뭐가 붙어 있는지 완벽하게 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데, 책 한 권에 인천의 모든 것을 쓸어 넣자는 것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인지 필자도 절감하는 바. 하지만 애교로 봐주기에는 이 책에 담으려고 했던 의욕과 의지가 너무나 장대했었기에 상대적으로 필자의 비판적 더듬이에 몇몇의 조각들이 애꿎게 부각되었다는 것을 고백하련다.

 

갈음할 시간이다. 이 책에 담겨진 내용과 의지는 실로 샘이 날 정도로 여행안내와 그 목적 한 바를 열심히 꾸미고자 했음을 인정한다. 정수사 대웅보전 겉표지부터 맨 마지막 별첨지도까지 또박또박 읽어 내리는데 꼬박 열흘이나 걸렸음도 밝힌다. 책을 덮는데, 앞집 꽃게 장수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떡 삼촌, 심술부리는 놈은 못 살아! 욕심 부려야 잘 살지!” 뜬금없이 가슴이 아려온다.

200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