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고양이 호동이가
나잇살을 먹어가면서
외출하는 빈도수가 잦아졌다
사람의 손을 많이 탄 호동이는
곁에 다가서는 사람마다
할퀴고 깨무는 것을 즐겨했었는데
여섯 달이 지나고부터는
제법 사물을 응시해 보는 시간이 많아진 것처럼
점잖을 빼는 게 자주 눈에 띄었다
우리 동네 고양이들의 주요 거점지는
태능갈비(돈비어천가) 주차장과
시장 공영주차장 일대를 배후지로 삼고 있다
먹잇감이 풍부하고
길 고양이를 비롯해 집 고양이들이 수시로 접선이 가능한
요충지인 관계로 이 일대는
밤만 되면 고양이들로 들끓어 댔다
자동차 밑, 담벼락 위, 버려진 박스 더미 사이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둔 봉투 틈 등
고양이들은 어디에든 모여서 혹은 홀로
무언가를 야금야금 씹어대기도 했고
가만히 어둠 속을 응시하기도 했다
간혹 얼굴이 암컷보다 너부데데한 숫컷들이
몇 몇의 암놈과 영역을 지키느라
발악을 지르는 일이 벌어지는 것 외에는
대체로 조용한 발걸음을 지키고 있었다
호동이의 몸에 이상이 보인 것은
이틀 간의 외박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부터였다
앞 다리에 깊게 패인 상처를 꿰맨 것은 그나마 외상이었기 때문에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왠지 심약한 병아리처럼
볕에 엎드려 있거나 주인의 품에 안겨 쓸어주는 손길을
미덥게 받아들이는 눈매가 전과 다르다는 것을
찾아든 손님들마다 느끼는 투였다
"쟤, 왜 저래?"
곡기마저 끊고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처럼 외롭게 앉아 있는 게
여간 영물스러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약 좀 멕여보지 그래!"
"하도 사납게 거부해서.....병원엘 갔는데 수의사들조차도 싫어하더라구요
게다가 약 값은 왜 그리 비싼지......"
그렇게 시름시름 앓던 호동이가
수퍼 집을 찾는 손님들에게 다시 장난을 걸기 시작한 것은
추석이 지나고, 엄밀하게 말하면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난 뒤부터였다
첫 외박의 칼 같은 두려운 기억이 가신듯
뒹굴고 냥냥 거리기를 몇 분간 치닥거리고는
라면 박스 위로 올라가 금새 잠든 듯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앞으로 호동이는
두 갈래 길을 선택할 것이다
집 아니면 길
집이 영원한 집이 될런지
아니면 길이 영원한 집이 될런지
이마저 집이 길이 될런지
불현듯 알게 모르게 공존하고 있는
모든 생명체와의 연줄이
누구로부터 연관이 되어 왔는지
뭔가가 번개처럼 스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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