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이 깃들자마자
단지, 신새벽 샛파란 허공으로부터
참새들이 출몰했을 뿐인데
우리들 곁에 잠식돼 있던
무의식적 물상들이 느닷없이
저마다 하나 씩 기품氣品을 드러내고 있다
어언 18년 째 나와 함께 살아왔던 고물 오토바이 발칸(VULCAN)과
어느 신화의 주인공의 정수리를 찌르려다가 실패한 고드름의 관계와
펼쳐들면 내면 깊숙하게 끄집어 올려지는 울분이 잔뜩 배인 ㅎ 신문과
다달이 수 만원 씩 내야 하는 지방지 신문값 영수증의 냉랭함이 그렇다
손잡이가 부재한 칼을 들고 섰는 꼬락서니다
놓자니 아쉽고
쥐고 있자니 혈관을 찌르고
가슴을 쥐어 듣어내고 싶은 욕망이 인다
연실 입방을 찧는 강 아무개에 대해서
죄다 얘기를 늘어 놓지만
정작 조리한 사실관계들로 둘러 쌓인
철거민 얘기와 먹고 살기 어려움에 처한 가난한 세상 얘기들은
명함 한 장 크기의 지면에 옭아매 갇혀 있었다
그런 느낌이 아침을 지배하고 있었다
종속과 지배의 부조리한 관계를 알면서도
쌍끌이 그물처럼 바다를 길어 올려야 하는 절박함들이
일상적이어야 한다는 건
고통의 세월이 아닐 수 없다
이마저도 관념화 되는 현실은
인간에게 너무도 커다란 형벌이 아닐 수 없다
화구는 달고 사는 사람을 알고 있다
화구畵俱가 아니라 화구火口이다
말 끝에 벌침 같은 독소들을 늘 쏘아대는 가운데
혹독한, 아주 혹독한 이 겨울에서도
당당하게 건재하고 있다
안소니 기든스의 말을 도용치 않아도
롤랑 바르트의 문학을 말하지 않아도
하물며 카프카의 부조리 이론을 말하지 않아도
우리들 곁엔 늘 이중구조 나선형이란 원형질의 본능을 떨쳐버릴 수는 없는가
느닷없는 생각이다
너무 늙어버린 내 발칸 오토바이
한 때 질주 본능의 끝은 어딜까 하고 무작정 달려보기도 했었다만
이젠 갈아치울 부속품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보니
자연사를 넘어 안락사를 한번 생각도 해봤다
발칸이란 이름 만큼 뜨겁게 타오르는 활화산처럼
마그마를 심장에서 뿜어내며
질주하던 그 시절은 어디갔는지
여명은 여지없고
아침 햇살에 드러나는 겨울의 흔적과 함께
상상으로만 불 꽃을 피우는 늙은 노새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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