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을 마저 떼어냈다
떼어내고 나니
달력 크기 만큼
때 묻지 않은
희멀건 벽
일 년 동안 꼼짝없이
벽에 달라붙어 있어
세월의 변통을 빗겨 갔구나
저 얼굴은
못에 박혀
그냥 멈춰 있는 줄 알았고
또박또박 지시된 날짜를 따라서
지워 가면 되는 줄 알았던
달력의 배후는
그렇게 무통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떤 날은 눈물이 너무 많았고
어떤 날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고
어떤 날은 절망이 깊어
먹 같은 펜으로 둥글게 지우고 싶은 날도 있었던
슬픔 많은 나날이었다
새해 달력을 받아들어
다시 그 자리에
오롯이 걸어둔다
눈물 받아 먹으며 피는 꽃도 분명 있을 테고
피를 빨아 마시며 크는 나무와 구름도
절망도
슬픔도
물론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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