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칼럼

올해엔 좀 더(인천일보)

濟 雲 堂 2009. 1. 29. 00:41

 

41784

 

 겸허하게 살아야겠다. 평생을 재래시장 마당에서 뒹굴며 살아온 나로서, 이웃 어르신들의 가슴 저미는 탄식을 더 이상 허리 꼿꼿이 세우고 듣지 않겠다. 1926년 신포시장이 개장한 이래로 최악으로 기록될 살림살이에 대해서 아버지로부터 듣지도 못했을 뿐더러 할아버지의 기록에서 조차 찾을 수 없었다. 영문은 뻔할 진데, 이토록 처참스레 설 명절을 보내야 했을 상황이고 보니 자식들 볼 낯이 서질 않는다고 이구동성 넋두리 잔치들이다. 떡국 한 그릇 제대로 끓여 드시고 나오셨을까만 설날 아침에도 좌판을 펼치시는 몇 몇 어르신들의 오기를 위해서라도 올해엔 좀 더 허리를 굽히며 살아야겠다.

 

 가난하게 살아야겠다. 년 전부터 일기 시작했던 현실 너머 상상과 착각으로 포장된 ‘부자 되세요’라는 허구를 철저히 뇌리에서 지워야겠다. 금반지 빼다 팔았고, 쌈짓돈마저 알겨내 외환위기를 극복하자던 지지난 정부시절엔 그래도 국제적 도처 희망을 버릴 순 없었다. 그래서 다들 떠났더랬다. 그랬던 그 나라에서 금융위기 촉발과 무모한 전쟁의 악순환 고리가 말석 도미노 조각 같은 우리나라를 강타하고 나니, 만간에 실직자 기백만 명을 양산할지도 모른다고 나발이다. 실직자 가족까지 어려움을 겪게 될 부담수치는 전체 인구의 절반을 밑돌 지경에 이른다고 하니 나부터 허리띠를 졸라 매야할 판국이다. ‘부자 되라’는 헛구호가 통용되기에 현실세계는 더 이상 이성적이거나 너그러운 덕담의 향연을 허락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당분간 ‘가난하게 삽시다’를 새해 인사로 바꿔야할 것 같다. 이 보다 더 낮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인사는 더 이상 없을 것이므로.

 

 공부하며 살아야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 그동안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왔던 양해심과 아는 데도 실물상황에 적용하지 않고 사는 게 숨은 지식인의 미덕이라 여겨왔었다. 뻔한 상황을 극악하게 밀어 붙이는 반민주적이고 비인간적인 행태들에 대해 묵과했던 지난 세월이었다. 그러나 모르는 게 최상의 약이 될 수는 없었다. 우리의 사랑스런 이웃들이, 경제적 약자이자 사회적 소시민인 내 이웃들이 허망하게 좌절해 무지렁이로 살아가는 모습을 더 이상 허약하게 바라 볼 수만은 없는 일이다. 모르기 때문에 상황 대처가 미약했을 뿐이고, 알아도 잘 몰랐기 때문에 분별력이 떨어졌을 뿐이고, 아는 데도 힘을 합치면 된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므로 올해에는 무조건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내 자식들에게 대물림해서는 안 될 일이기 때문이다.

 

 기도하며 살아야겠다. 라틴 아메리카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까마라 주교와 구티에레스 신부가 말하길 ‘삶이 곧 기도’라 하지 않았는가? 그 어렵던 지난 세기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을 결속해 자본주의 강대국과 부패정권에 맞서 대항해 오늘날만치 민주주의로 승화시킨 두 사제의 신조는 삶의 적극적 참여가 곧 기도 생활과 같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에게 놓여진 기축년은 나라 안팎으로 여러 증후의 위기상황들이 전개될 전망이라고 내외신은 전하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도 있다. 대저 아르헨티나의 축구 신동 리오넬 메시조차도 기회가 주어질 때 최선을 다해 골을 넣는 자가 훌륭한 골잡이라 말하지 않던가.

 

 사랑해야겠다. 그리고 반성해야겠다. 사랑하는 데에 첫걸음은 관심과 상대방에 대한 존재성을 인정하는 것이라 했다. 혹여 내가 살기 바쁘고 죽을 지경인데 어찌 남에게 관심을 두겠냐고 언죽번죽 떠들어 댈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나’는 ‘나’아닌 수많은 ‘나’가 ‘나’를 만들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올해엔 좀 더 겸허하게, 좀 더 가난하게, 좀 더 공부를, 좀 더 기도하며,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반성하면서 살아가야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