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쓴 仁川(남의 살)

인천항 -조병화-

濟 雲 堂 2008. 4. 10. 23:56

 

 

생활을 찾아 멀리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끼리

 

모여들은

 

아 '아세아' 또 하나 여기 종점이라오

 

낯 설은 방언끼리 주점에 앉아

 

정 없이 웃어가는

 

아 영 여기 또 하나 방언지대라오

 

제멋에 지쳐 주점은 번성한다

 

뒤떨어진 세월 속에

 

모두들 대도시의 풍속을 자랑한다

 

거리마다 문화의 첨단을 걸어간다 한다

 

마구 멋들은 머리카락과 스카아트가

 

게으른 근육처럼 향수를 뿜는다

 

향수는 의무처럼 육지에서 왔다

 

바다로 밀려나온 풍토에 해풍이 해풍이 불어

 

해풍 속에 꿈틀거리는 미래 같은 것에

 

나는 방황하며

 

유리창 밖에 먼 등대 불을 쳐다본다

 

생활을 찾아 멀리 가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들은

 

아 '아세아' 또 하나 여기 종점이라오

 

아 영 여기 또 하나 방언지대라오

 

 

<조병화 시집> 1956년 10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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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조병화 시인의 부음을 접한다

이러구러한 이유로 조문을 못간 게 마음에 걸렸지만

다른 분들의 조문길에 마음을 보태어 가주시길 외로 부탁드렸던 기억이 난다

 

1982년 조병화 시인은 인하대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셨는데

문학도라면 걸걸한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말言의 사원寺(시詩)에

취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강의로 유명하셨다

강의실은 늘 꽉 차 있었다. 나처럼 도강하는 젊은이들도 꽤 많았고

근처에 사는 주민들도 더러 눈에 띄기도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얼마간 외도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공인 법학도의 길을 간 것은

더 더욱 아니었다. 당대의 화두에 겉 잡을 수 없이 빨려들어

이제까지 살아온 생에 최대의 갈등을 겪어야 했던 시기였으므로

조병화 시인이 강의 했던 '현대시의 조류'는 곧 잊혀지고 말았다

 

피의 따뜻함, 피에도 분노가 있다는 것

피에도 냉정한 현실이 흐른다는 거

피에 서린 사랑과 피에 녹아든 희망 그리고 아버지의 피는

더 이상 영험과 이상의 존재가 아니라

구체화 시켜야 될 현재의 몫이라는 걸 알기 시작할 무렵에는

조병화 시인과 나의 피가 조금은 다르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각설하고...

조병화 시인은 한국전쟁 이후에 서울 생활을 접고

인천항이 내다 보이는 만국공원(자유공원) 윗 자락에 위치한

제물포 고등학교에 국어 선생으로 취직을 하면서 인천과 인연을 맺는다

당대 최고의 인재를 길러온 명문고의 국어 선생이란 직함도 유명했지만

무감독 시험을 통해 학생들 자율성을 강조한 길영희 교장 선생님의

교육철학도 이미 널리 알려져 인천의 제고! 그러면 최고라는 등식이 성립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인천항>은 바로 이 시기에 발표한 작품이다.

 

'생활을 찾아 멀리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끼리'와

'여기 종점이라오' 그리고 '또 하나의 방언지대라오'라는 구절은

인천의 지역적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천이 외국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일감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로 넘쳐나고

기회의 땅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서 전국 팔도의 '낯 설은 방언'들은

시인에게는 '정 없이 웃어가는' 모습으로 보여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천은 이러한 내면을 뒤로 하고

'모두들 대도시의 풍속을 자랑한다' '거리마다 문화의 첨단을 걸어간다'라고

표현하면서 외국문물이 흘러 넘쳐났던 인천의 이국적 모습에서

'아 아세아 또 하나 여기 종점이라오' 국소적인 면을 탈피해

아시아적 시각에서 인천을 바라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천항>이란 시에서 노래한 인천풍경이

지금도 유예하다는 것은 과히 유쾌한 해석은 아니지만

차이나 타운을 비롯해 아시아 및 러시아 사람들이 길거리에

부지기수다. 항구의 정체성이 갖는 이별과 만남 그리고 어디든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자유로움 등은 정착해 정주하고자 하는 터잡이 삶에게

늘 새로운 삶의 공식들은 제공한다는 단점이 있다

거기에 서울이 부채질 하고 있는 형세이고 보면

인천은 늘 '나는 방황하며 유리창 밖에 먼 등대 불'을 하염없이

불바라기 하는 불안한 존재로 인식되기 십상인 것이다

 

조병화 시인은 이후 인천 생활을 마감하고 경희대로 적을 옮기게 된다

그러다가 다시 인하대로 안착하는 생활을 반복한다

<인천항>은 시인의 인생역정이 말해주듯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드는

'생활을 찾아'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의 애련을

속절없이 남겨주고 있다

설령 그 것이 '향수의 의무'이든

'아 영 여기 또 하나 방언지대'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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