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로 쓴 仁川(남의 살)

인천항 -박인환-

濟 雲 堂 2008. 4. 6. 23:52

 

사진잡지에서 본 향항 야경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중일전쟁 때

상해부두를 슬퍼했다

 

 

서울에서 삼천 킬로를 떨어져 있는 곳에

모든 해안선과 공통되어 있는

인천항이 있다.

 

 

가난한 조선의 프로필을

여실히 표현한 인천항구에는

상관도

영사관도 없다

 

 

따뜻한 황해의 바람이

생활의 도움이 되고저

냅킨 같은 만내로 뛰어들었다

 

 

해외에서 동포들이 고국을 찾아들 때

그들이 처음 상륙한 곳이

인천항구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은주와 아편과 호콩이 밀선에 실려 오고

태평양을 건너 무역풍을 탄 칠면조가

인천항으로 나침을 돌렸다

 

 

서울에서 모여든 모리배는

중국서 온 헐벗은 동포의  보따리같이

화폐와 큰 뭉치를 등지고

황혼의 부두를 방황했다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와

주둔소의 네온싸인은 붉고

짠그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온 작크가 날리는

식민지 향항의 야경을 닮어간다

 

 

조선의 해항 인천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

상해의 밤을 소리 없이 닮어간다.

 

 

-신조선, 1949년 9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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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모든 물은 바다로 모인다 했던가

수평의 삶을 꿈꾸지만 알 수 없는 깊이의 세계로 녹아들어

여전히 미궁을 헤매는 우리네 삶을 그저 바다와 같다고 하자

 

목마와 숙녀라는 시편으로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박인환 시인의 오래 묵은 시 묶음집을 펼쳐드니

제작 연도가 무려 50년 전의 것이었다

 

인천이라는 지평에서 살을 붙이고

영혼에 숨을 불어 넣어 이만큼 자라오면서

인천의 정체성에 대한 초발심만 뜨거웠지

이를 구체화 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은 늘 나의 화둣거리였다

 

그러나 해방의 신조류를 타고 인천과 서울을 넘나들었을 시인 박인환은

낡은 역사책을 펼쳐들고 헌칠판을 향해 백묵으로 써내려가는 젊은 선생처럼

간단없이 인천의 역사적 상황을 거침없이 기록하고 있었다

그가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인천의 것이었으나

홍콩의 이야기였고 중국의 이야기였으며

전 지구적인 사조를 한 눈에 담아내는 혜안같은 것이었다

 

그렇다.

중일전쟁을 통해 슬픈 모습으로 변해가는 상해를 동경했고

인천항을 바라보는 영국영사관, 러시아 영사관, 일본 영사관, 중국(청국) 영사관, 세관(상관), 성조기가 휘날리는 항구 뒤 편 미군 주둔지를 연민의 눈으로

관조했던 것이다.

은과 아편 그리고 중국산 콩, 게다가 얼굴이 일곱 가지 색깔로 뒤덮여 있는

칠면조 따위들의 입항을 바라보며 점점 인천이 슬픔 모습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기어이 목도하게 되는 거였다.

홍콩이 그러했고 상해가 그러했고 인천이 닮어가고(닮아가고) 있었다

 

향항의 유니온 작크, 상해의 일장기 그리고 인천의 성조기는

당대의 슬픈 아이콘이었다. 식민지의

그랬다. 미군이 우리나라 최초로 주둔지를 마련한 곳도 인천이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부산이나 목포 또는 군산 등의 개항장을 놔두고

인천항에 그 인연을 맺은 것 자체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기난 긴 역사의 사슬이었다

 

시인 박인환의 예언같은 이 시는 오늘날까지 그대로 전이 된다

그대로 '가난한 조선의 프로필'이 되었다

한국 전쟁 바로 전 해에 써 내려간 시이지만

시공을 넘나들어 서러운 이미지로 각인된 인천항의 더께가

오늘따라 깊은 어둠에 잠겨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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