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대화

인터넷

濟 雲 堂 2008. 4. 9. 17:32

그젯밤부터 무슨 사단이 벌어졌는지 인터넷 연결이 되질 않는다

꼬박 하루가 지나고 다시 날이 서서야,

십 수 차례 전화를 걸어 귀찮도록 괴롭히고 나서야,

겨우 인터넷이 연결되었다

 

아무런 일 없던 것처럼

일일이 메일을 확인한다.

전전 날의 막연한 노기 서림과

직전 날의  IT강국 자존심 운운해 가며 애먼 사람들을

자극해 왔던 끓는 심장의 박동은 온데간데 없이

각종 회의에 참석을 요망한다는 내용과

펼쳐보진 않았지만 대출 최고 5000만원이란 제목의 스팸 메일까지

도합 칠십 여 통의 메일을 허투루게 점검해 본다

 

먼 발치서 볼륨을 최대치로 올린 자동차 여럿이

떼거리로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길거리는 맥없이 나자빠진 어둠을 부축인 채

긴 그림자를 가로등 허리에 하나 씩 걸친 새벽 두 시

 

부지불식 간에 인터넷 사용에 목줄이 걸려 있어

사고의 재미와 더불어 생계에 위협적 요인이 되고 있는 현실이

새삼 불안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편하게 잠들 수 있다는 것은 크나 큰 축복이었

생각은 멈춰 있고  원고마감에 임박해 있지만 불길한 예감은 들지 않았다

이렇게도 살 수 있는데 라고 내면의 불안을 얼르는 데에는

불과 몇 분 밖에 소요되지 않은 단잠의 시간

 

보이지 않는 실체들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힐책들은

적당한 무시의 단계를 이해했는지

부드럽게 전화가 오기 시작한다

아마 전화마저 무시했더라면 당장에라도 찾아올 요량으로

숨겨진 육두문자의 여운이 너무도 명확하게 전달 될 무렵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연락 준 것들을 무시해서는 안 되리라는 계고를

모 신문사 주필이 은근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소통과 전달 그리고 실체와 현상적 존재 사이에서

나의 존재성은 잠시 멈춰 있을 따름이었지만

당시에 나의 존재성은 암癌적인 상황으로 보여졌다

암은 생체 세포간에 소통치 못하고 따로 노는 놈 아니겠는가

오히려 다른 세포들 간의 유통 구조를 차단해 제 잇속만을 챙기는

그야말로 암적인 존재. 뭐, 일부러 그런 지경까지

몰아가고자 의도한 건 물론 아니었지만

여하튼 상황은 그렇게 전이되어 갔고

인터넷은 이렇게 다시 잘 연결 되었다

 

팽팽 잘 돌아간다. 순조롭다. 거침없이

나도 돌아야겠다.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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