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목(都市遊牧)

濟 雲 堂 2008. 3. 22. 16:38

 

집이란 단어를 머리에 고정시키려다보니

잘 붙어 있지 않으려고 한다

과거와 현재로부터 엇 나간 이빨의 아귀가

딱 들어 맞질 않으니 집이란 단어가 제대로 틀에 박힐 리 만무했고

감성에 젖어 가치의 지속적 유지관계와 끈끈함을 중시하는 뇌벽의 입장에서

요즘의 집이란 개념을 붙박아 놓기에는 저항감이 더 컸었나 보다

 

집의 정의는 우주다

집 宇 집 宙는 우주적일 수밖에 없지만

전체의 뿌리는 집이라는 명사이다

그래서 집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집에 대해서 느끼는 모든 감각적 요소들과

물리적인 안정감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공간인 셈이다

 

우리가 사는 집들이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되고부터는

요즘 집들의 구조나 쓰임새에 재미나는 구석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집에서 사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 집 밖에서는 재밌게 지낼 수 있다는 등식은 아니지만

생사를 받드는 기초 공간으로써 그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에 이의가 없을 것 같다 

 

조선 시대. 특히, 후기 역사에 드러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특별하게 고개를 떨구게 하는 분들이 계신데

이항로, 정약용, 김홍도, 김정희, 최한기, 서유구, 홍대용, 박지원 등이다

이항로 선생은 위정 척사론을 주장하신 분으로 할아버지 뻘 되시고

정약용 선생은 위대한 문사로 김홍도, 김정희, 홍대용, 박지원 선생 등은 이미

널리 알려져 굳이 말 이을 필요조차 없고

우리 철학을 독자적으로 정립한 최한기 선생은 그나마 덜 알려졌지만

한 때 마음의 스승으로 모셨던 분

이 가운데 오늘의 주제 '집'과 연계해서 봤을 때

서유구 선생은 적어도 우리가 사는 '집'에 대해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신 분으로

꼭 기억을 해야 할 것 같다.

 

얼마전 사무실 책들을 정리하면서

서유구 저 '임원경제지'를 차마 내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숨어 있다

풍석(楓石)선생은 과학을 비롯해 수학, 농업에 조예가 깊었던 실용주의 학자였다

다산(茶山)이 수 백권의 인문학 책을 발간했다면

풍석 선생은 농업과 기술 관련 서책을 수 십권 지어낸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임원경제지에는 집과 관련된 서책 부분이 두 곳 나오는데

섬용지(贍用志)와 상택지(相宅志)가 그 것이다 

열 여섯 장으로 이루어진 임원경제지 안에서 이 두 곳에는

전국의 주거환경과 지리, 주거지 선택과 건축, 가재도구, 공제 및 교통수단 등을

피력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집에 대한 전반적 의미와 실질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고 살기 좋은 곳, 지어서는 안 되는 집 등등에 대한 세세한 기록들이 실려 있다.

 

조선 후기에 이렇듯 과학적 인식을 통한 삶의 공간에서

어떻게 하면 재미나게 살 수 있는가를 기록한 책은 아마도 전무할 것이라 본다.

어쨌든 충격이었다.

 

위 사진에 드러난 큰 규모의 건물들을 빼고

키가 작은 건물들은 조만간에 재개발의 물살을 분명히 탈 것이다

현재 그렇게 진행 중에 있다. 갖은 플래카드에 신청서 납부율에 대한 공고가 나 붙은 걸 보면 재개발의 모래시계는 나락을 향해 분명 진행 중에 있음이 틀림없다

문제는, 과연 살 만한 공간을 연출하느냐에 있을 것이다

재개발에 따른 보상문제를 어떻게 풀어 갈 것이냐는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신자본주의 논리에 맞물린 개발의 악순환과 돈의 열병을

주민들이 어떻게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되기 때문이다

 

위의 공간은 근대 인천의 역사를 보지하고 있는 신흥동 일가 일대로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는 곡물 창고 군들이 도열해 있던 곳이었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지역 주민들의 생활환경 등을 충분히 고려해

안배가 이루어져야 마땅한 공간이다.

살만한가?, 자랑스러운가?, 자연 환경에 위배되진 않는가?

경제적인 무리수는 없는가? 등이 충분이 논의 되어야 함이 옳다

헌데, 그 시작이 미궁이다

 

집이라고 써 놓고 요리조리 살펴본다

집은 그냥 집이 아니었다

ㅈ...ㅣ...ㅂ 또는

ㅂ...ㅣ...ㅈ 도 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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