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출처가 있다
목숨의 진원지는 부모님이지만
지리적 시원은 나고 자라난 곳
친구들과 이웃들과 형제들이
한 무더기의 사회를 이루어 친분을 쌓아 가는 곳
그 곳을 고향이라 한다
인천이 고향이다
해풍에 곰삭아가는 말린 망둥어가
내 본질인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바닷가 어디든
산을 닮은 섬 어디든, 놀이터 아닌 곳이 없고
오들오들 떨면서 젖은 육신을 햇볕에 널어 놓고
좋아라 흥얼거리던 유년기에
바다는 나의 교실이었고 부엌이었고 놀잇감이었다
늙어가는 형제들과 나잇살 먹어가는 동무들
어느덧 검버섯이 핀 동네 어른들과 자리에 앉으면
인천이라, 한 복판 바다를 보던
얘기들을 추억해 내느라 정신이 사나울 정도다
이야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희미한 옛 기억이 곰삭은 구수한 노랫가락으로 흘러 나오게 된다
바다와 배와 이별과 항구와
별을 헤던 유년의 밤으로 시작해서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까지
메들리, 파노라마로 엮일 때가 되면
나이든 어른부터 자리를 털고 일어나
빈 자리를 향해 툭 내 던지는 넋두리들은
이구동성으로 바다를 찾아야 한다는 각설이었다
이제 적접 지역이라느니
이데올로기의 분열이라느니
묵은 포대에 담았던 썩은 이해관계는 집어 치우고
우리가 살려면 어떻게 하든 간에 바다를 터 줘야 한다는
대오각설들을 한 마디 씩 채우는 것이었다
사실이 그랬다
적접의 논리로 인해 전 해안가를 무시무시하게 두른 철책들
독과점 경제 일꾼들이 점유하며 출입을 통제하던 도크와 산업시설들로
인천의 바다는 쇠사슬에 꽁꽁 묶여 있었던 것이다
도무지 만져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먼 발치 요염 떠는 벌거숭이 바다를 코 앞에 두고도
애무할 수 없는 심정으로 또 다른 형제를, 애인을,부모를
느낄 수 없다는 것 만큼 애절한 것은 없을 것이다
나의 출처는 바다이다
바다의 뼈와 바다의 강론을 들으며 성장해 왔건만
삶의 순환을 느끼게 해주는 피, 바다는
멈춰 있는 것이다
괴기스러운 목소리의 주인공 가수 한대수가
너무나 억울하다
너무나 비참하다고 노래한 늙은 고아의 항변처럼
내가 그 처지고
바닷가 사람들이 또한 그 처지이다
시드니 항구를 보고
샹하이 항구를 느껴보고
요코하마 항구를
단뚱항,방콕과 파타야의 바다는
적어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자유가 깃발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몇 해 전,
인천의 바닷가를 느껴보려고
청라도 다리 밑에서부터
소래포구까지 수 십 시간을 걸어다녔다
땡볕도 그런 땡볕이 없을 정도로
황량하고 무시무시하고 거친 바다는
내 가슴을 모래알로 채우고 말았다
사막이다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인천은 사막 위에 둔황을 지은
사원이자, 신기루 같은 궁궐이었다
문제는 바다와 연계가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인천이란 도시는 잿빛 미래를 담보해낸 채
철저한 도시형 건물들로 구성돼 있고
과거는 사라진지 이미 오래였다
늦은 밤
한 눈에 도크 전체가 들어오는 창가에서
가둔 물과 나와의 관계는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 묻는다
졸업앨범
돌아가신 부모님
이국으로 떠난 형제들
빛 바랜 사진첩
떡 김 흐르는 방앗간
도시개발 접수증
시작 노트
헤밍웨이와 아바나
그리고
바다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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