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발견한 그리스 정교식(式) 묘비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은
인생이란 장고의 길에서 익숙하게 길들여지는 �은 여행의 일부이다
그런 것이 하루다.
여행에 대한 견지에 따라
오늘 하루가 어떻게 변하게 될른지는
아마도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몫이 아닐까
언젠가 꼭 이르게 될 길에 대해 생각에 젖어본다
머나먼 이역을 찾게 된 목적 자체가
이역에 대한 것이라면 철저히 이역에 대한 것이어야 하는데
걷고, 기어다니고 한 숨을 들이킬 때마다
같은 선상에 나란히 놓여진 공동의 운명선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어릴 적 우리들 삶의 처처에는
무덤들이 참 많았다
내가 태어난 답동성당 만 해도 주교관 일부가 묘지였었고
지금 선인학원 일대도 묘지
인천의 진산이라 칭하는 문학산 게다가
유년기에 왜 그리도 소풍하면, 문학산 행이었는지... 거기도 묘지
신기촌 도자기 공장 부지 일대 역시 주변이 다 공동묘지
현재 광성학교 모모산(돌산) 일대 역시 머릿털 깎인 채
나동그라져 있는 주인없는 무덤들
간석동 철마산 아래 곁에 목장이 있던 자리
지금은 빌라촌의 그림자가 간석 시장까지 맞닿아 있던 그 곳에도
청량산, 자유공원 기상대 인근
이루헤아릴 수 없는 무덤들이 곳곳에 있었다
마치 죽음은 '너희들 곁에 가까이 잠복해'있다는 것을
경고 문구처럼 접하고 살았던 것이다.
죽음(무덤)은 물리적 시간이 멈추어 있지만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고 늘 어디론가로 향해가는 미래인 곳
거기 나의 유년의 놀이터였고 불장난의 진원지였고
미끄럼 놀이의 일부였던 것이다
아버지를 내 손으로 처음 묻고부터
죽음은 � 뼘 더 가까이 내게 다가왔다
태양이 드리워진 그림자의 머리 쪽 이미지가
발목까지 이어져 있다는 것을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
청학동 외국인 묘지의 비석들은 푸른 이끼로 도배돼 있었다
음습한 소나무, 벗나무 숲에 가려
잔뜩 웅크린 채 가위잠을 자는 노숙자처럼
그렇게 처연해 보일 수가 없다
어느 큰 저택의 잘 꾸며 놓은 정원처럼
둔중한 발 걸음을 살폿 지지해주는 잔디의 감촉
이형의 비석들이 발산하는 경이
그런 예사롭지 않은 느낌은
요코하마 외국인 묘지에서도 발견된다
이미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를 섭렵한 이후였으므로
상하이 외국인 묘지 또한 두고두고 눈에 각인했던 터
이런 즈음에 묘한 장난끼가 발동한다
유년의 놀잇감처럼 말이지
묘비는 왜 누워 있는 걸까
저 비석에는 왜 릴리 꽃 장식을 했을까
저 십자가는 왜 그리스 정교 식이고
저 십자가는 셀틱, 집 모양(성당),
저 무덤의 주변에는 왠, 앵커(Anchor)가
저 비석은 비감함이 드러나는 조각을 해 놨을까
애초 인천과 관련된 외국인들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매장지를 찾는 게 목적이었는데
또 다른 우연과 만나게 된다.
점점 가까와 지고 있음이 감지된다
손이 떨리고 기억력이 퇴조되기 전에
좀 더 부지런 떨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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