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돌

송현교

濟 雲 堂 2007. 6. 30. 16:50

 

 

도시를 떠나서 살아본 적이 없다

그물망처럼 얼키설키 엮여 있는 이 도시는 나의 자궁이었고

요람이었고 최종적 삶의 무게를 내려 놓아야 하는

공간임에 분명하다고 생각해 왔다

고작 얼마 간의 영어 생활과 삼십 개월 가까이

강원도 홍천 인근 산 속의 군대 생활을 제외하고는

도시적 끈을 놓아 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 부쩍 바다나 숲을 그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단지 그리는 시간이었다

그리움이라 말하기엔 너무도 깊게 도시 속으로 들어와 버렸고

그림으로 그려 넣기엔 연루된 것들이 너무 많아져

빼도 박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내 그림에는 유예된 그림들이 많다

폭력적 철거로부터

강압적 행정력으로부터 살아 남은

반 시대적 증거들이 그 것이다

여전히 유효한

내 삶의 바탕화면들이다

 

불과 20여 년전까지만 해도

비릿한 갯물을 담아냈던 수문통 거리

바닷물과 고랑물이 섞여 야릇할 정도로 비위를 건드리긴 했지만

그 거리를 거닐다가 우연히

송현교라는 다리 기둥의 일부를 발견하게 된다

 

황포돛배 수리점

철갑으로 두른 배수문과 인천제철 굴뚝에서 토해내는 희멀건 연기

관 짜는 목수집, 한 쪽이 기운 수문통이발관 간판

송현 천주교회와 중앙교회

짤딱막한 단층 집들이 저녁차림으로 피워 문 매캐한 굴뚝연기

여기저기 황금 비늘 조기를 널어 놓은 길 바닥

그리고 내 세 발 자전거...

 

매장의 유효기간이 언제까지인지는 모르지만

송현교를 발견하는 순간

오래된 기억들이 흡사 유물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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