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한당(不汗黨)
내가 아는 어른 가운데 한옹(汗翁)이란 분이 계신다.
한옹이란 그 분의 호(號)이다. 일찍이 “의사 노릇”을 하신 분이었다.
당신은 자신의 일을 때때로 그렇게 표현하기도 하셨다
유난히 새로운 것을 무척 탐(?)하셨던 탓에 우리네 사는 구석구석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살림살이며 먹을거리 등등에 매우 관심이 많으셨는데
특히 식도락(食道樂)에 일가견이 있으셨던 분이셨다.
“자네는 젊은 사람이 콧수염에 머리는 댕기머리 게다가
항아리 같은 한복 바지는 왜 그리 즐겨 입는가?” 박소(拍笑)하며 물으시면
나는 은근짜 동문서답으로 “선생님께서는 왜 그리 먹을거리에 연연하십니까? 늘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 즐기시니 말입니다”
라고 되 받아쳐 물은 적이 있었다.
선생은 “양대불귀지운(陽臺不歸之雲)”이라는
글귀를 조근조근 내 손바닥에 써 주시며 “한번 스쳐간 구름은 다시는 그 곳(양지)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한번 사는 인생
다양한 경험 새로운 음식을 찾는 즐거움조차 없다면 무슨 낙으로 노년을 즐기겠는가? 라고 말씀하셨다.
기실, 한옹은 바쁘신 분이시다. 여든 여덟 즉 미수(米壽)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펴내고 대학에 강의를 다니시는 등
열정적으로 땀을 흘리고 다니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그 분의 호도 ‘땀을 흘리는 노인’이라 하지 않았던가?
언제부턴가 땀을 흘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세기말적 증후군이라 예견했던 선대 어른들의 딱히 들어맞는 말이 되어 버렸다
적어도 불한당(不汗黨직역: 땀 흘리지 않는 무리)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
내 이웃의 어린 벗들과 동락(同樂)할 것부터 서둘러 찾아야 할 것이라 짐짓 다짐해 보지만, 그 게 잘 안 되는 일인가보다. 아직까지 헤매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지.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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