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공백(空白) 3.
동지팥죽
한낮임에도 부끄러웠다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지나쳐 버린
비보(悲報)를 접은 오후
어둠은
슬픔의 자객처럼
창 밖에 서성거렸다.
동짓날 저녁
내 영혼의 음덕陰德들은
솥 단지에서
대가리 터져 가며
선지피 흘리는 팥 알갱이처럼
복수를 꿈꾸고 있을까
여섯 살짜리 계집아이
머리통을 꿰뚫고 지나간
이라크 침공 미군의 총알이
별똥처럼 스치고 있다.
북국의 바람에
냉혈이 되어
똬리를 튼 채 잠는
200만 또는 30억의
절대 약자들의 꿈에서
동짓날 밤은
깜깜 어둠 세상
숨어서
남모르게 사랑한다는 것조차
부끄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