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일기

공백3

濟 雲 堂 2007. 9. 9. 22:22
 

따뜻한 공백(空白) 3.

   동지팥죽

 

한낮임에도 부끄러웠다

하고 싶은 말

못하고 지나쳐 버린

비보(悲報)를 접은 오후


어둠은

슬픔의 자객처럼 

창 밖에 서성거렸다.

 

동짓날 저녁

내 영혼의 음덕陰德들은

솥 단지에서

대가리 터져 가며

선지피 흘리는 팥 알갱이처럼

복수를 꿈꾸고 있을까

 

여섯 살짜리 계집아이

머리통을 꿰뚫고 지나간

이라크 침공 미군의 총알이

별똥처럼 스치고 있다.


북국의 바람에

냉혈이 되어

똬리를 튼 채 잠는

200만 또는 30억의

절대 약자들의 꿈에서


동짓날 밤은

깜깜 어둠 세상

숨어서 

남모르게 사랑한다는 것조차

부끄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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